1. 요새 트레바리 독서모임 읽을거리로 선정된 류이치 사카모토의 자서전을 읽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시간 감각이 결여된 아이'라서, 음악이라는 시간 예술 -직선적인 시간 속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켜나가는 창작 활동- 에 대한 재주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을 부감하며 순서대로 펼쳐놓고 글을 써보겠다며 이 책을 시작한다.

2. 시간 감각이 결여된 아이라서 음악에 대한 재주가 없다는 말은 당연히 굉장히 기만적이다(농담이다...). 그러니까 강동원과 현빈이 내 외모는 평범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느낌인거다. 유년기부터 책을 쓰고 있는 현재 시점으로 이어지는 자서전 속 이야기 또한 그의 음악처럼 흥미진진하다. 충실한 기억에 기반한 스토리텔링 실력에 더하여, 성숙한 어른의 렌즈로 돌아보며 어린 시절을 잘 채색해둔 글이다. 읽는 것이 즐겁다.

3. 유치원 여름방학, 당번으로 돌아가며 돌본 토끼에 대한 마음을 노래로 만들어보라는 숙제를 받은 류이치 사카모토였다. 노래를 지으면 지을수록 내가 접한 토끼와는 다른 뭔가에 대한 음악을 만들고 있다는 위화감을 느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는 아래와 같이 썼다.

4. 뭔가를 말하고 행하는 순간 그것은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내 손을 떠난다. 그것이 글이었든 영상이었든 음악이었든, 창작자는 떠올린 적도 없었던 새로운 해석이 더해지고, 재창조되기도 하고, 밈으로 박제되기도 할테다. 창업자가 세운 회사도 시장과 고객, 그리고 동료들을 비롯한 이해당사자들의 거대한 요구에 때로는 떠밀리듯 움직이고 변화할테다. 어쩌면 최초의 비전과 꿈은 옅어질지도 모른다.

5. 이런 변화와 변질, 오해와 상실로부터 오는 고통보다 이것들을 감수하며 계속해서 뭔가를 만들고 소통하며 방구석이 아닌 세상에 뭔가를 내보이는 데에서 오는 기쁨이 크다면. 그리고 수많은 목소리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끝까지 걸을 각오가 섰다면. 비로소 뭔가를 만들고 널리 내보일 준비가 된 것이 아닐까.

6. 그리고 그걸 감수할 각오를 했었든 아니면 그렇지 못한 채로 먼저 세상 앞에 서게 되었든 간에, 내 안에 있는 뭔가를 끄집어내어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창작자와 창업자들에게, 사람들이 조금 더 너그러웠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때론 실수하고 오해받고 세상과 부딪힐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