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속해 일을 시작한지 한 달이 흘렀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되었는지를, 지난 추석 연휴 동안 인스타그램과 링크드인,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미 5월 중순부터 파트타임으로 돕던 회사인지라 산업에도 일하는 방식에도 또 함께 하는 사람들과도 익숙해져가는 중이라 생각했지만, 풀타임으로 그리고 더 장기적인 호흡으로 일하기로 하니 또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이 많다. 여러모로 감사한 제안을 해주셨던지라 그만큼 더 잘해야 하겠다는 부담감도 컸는데, 한 달을 돌아보니 그래도 다양한 영역에서 꽤나 많은 것들을 했구나 싶다. 리더와의 면담으로부터, 또 왕창 받은 여러 동료들의 감사 인사를 통해, 그래도 아주 틀리게 가고 있지는 않았구나 하며 안도했다.

일주일에 한 차례씩 상담을 받다보니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더 깊어졌다. 예전에는 일하면서 계속 더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 탓에, 계획했던 어떤 단계나 지점에 이르거나 또는 동료들로부터 감사와 칭찬을 받아도 충분히 기뻐하거나 만족해하지 못하고 다시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곤 했다. 사실 지난 한 달도 그러했다. 계속 더 많이 더 잘 해야지 생각하다보니, 또 다시 어느새 몸과 마음을 갈아넣기 시작한 것 같다. 

하지만 이제 그런 나를 깨달을 수는 있는 정도에는 이른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잠시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상황에 머무른다고 해서, 큰일이 나거나 그 자리에 멈춰서서 안주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가끔은 기분 좋음을 즐기고 스스로를 칭찬해줄줄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더 오래도록 즐겁고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

아래는 동료들로부터 받은 감사 인사 중 하나.

지난 6월 말에 이어 9월 중순 다시 고성에 다녀왔다. 올해 기억에 남을만한 여름의 순간들은 모두 고성에 있었다. 두세 시간 운전해서 넘어가면 동해바다와 울산바위, 맛난 아저씨 소울 푸드들, 그리고 무엇보다 반겨주는 옛 동료이자 감사한 친구가 있는 곳.

첫 날 첫 일정은 신선한 생대구로 끓인 대구탕 맑은 국물이 얼마나 깊던지, 또 갓 부친 대구전은 어찌나 맛나던지. 게눈 감추듯 흡입했다. 정미소를 개조해 만든 운치있는 카페에서 창 밖으로 떨어지는 비를 감상하던 시간도 좋았다. 온천욕을 마치고는 식혜와 솔의 눈을 나눠마셨다. 오리 로스구이를 먹고는 진공관 스피커가 놓인 카페에서 음악을 듣다 들어와 위스키와 와인을 꺼내 마셨다.

다음 날에는 장칼국수로 해장하고 알차게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 동루골 막국수 본점에서 수육과 동치미 막국수를 먹었다. 비가 그치고 쨍하니 밝은 날, 설악산을 바라보며 얼음 동동 뜬 동치미를 마시니 머리 끝까지 시원해졌다. 아야진 해수욕장을 내려다보며 커피를 마시고는 설악산 울산바위를 바라보며 운전해 귀가. 더 많은 고성에서의 1박2일 사진은 링크에서.

9월 중순, 떠나가는 여름의 끝 부여잡고 알차게 먹고 마시고 놀았던 즐거운 1박2일이었다. 종종 이렇게 서울을 벗어나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다시 일을 시작하고 금새 일에 몰입하는 스스로를 발견하면서 기쁘고 반가웠다. 하지만 동시에 예전처럼 오로지 일에만 몰두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계속 품고 있었다. 평일에는 일만 열심히 하고,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쉬다보니 시간이 금방 흘러가고 있다. 지난 8월 회고에서, 삶의 단차를 여럿 만들어두어야겠다고 다짐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책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의 저자 제임스 클리어는 '정체성'을 변화시킬 때 비로소 습관이 생겨나고 자리를 잡는다고 말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결정하고, 작은 성공들로 스스로에게 증명하면서 비로소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예전에는 일하면서 의도적으로 내가 갖고 있던 정체성의 갯수를 줄여나가려 했었다. 오직 '일하는 나'만을 최우선에 두고 이를 제외한 여러 정체성들을 하나씩 줄이고 죽이려고 애썼고 그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믿었다. 덕분엔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과 소원해지기도 했고 일 말고는 잘 모르는 사람이 되어갔다는 반성을 한다.

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이후부터 캠핑용품을 사모으기 시작했고 또 뉴스레터를 시작했다. 실은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겠어-라고 다짐하기도 전부터, 나는 캠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일지도. 뭔가를 하거나 배우는 나, 뭔가를 믿는 나, 누군가의 옆에 있거나 응원해주는 나 등, 일하고 캠핑하고 글쓰는 나 이외에도 또 되고 싶은 무언가들이 알게 모르게 더 있어왔을 것이고 또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다. 

앞서 1에서 쓴 것처럼 더 오래도록 즐겁고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서, 그리고 더 나아가 '일하는 나' 없이도 즐겁고 건강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 앞으로는 이런 마음의 소리들에 더 귀를 기울여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