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몬스테라, 직접 산거 아니지? 누가 준거지?" 문득 날아온 여자친구의 질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황과 함께 이어진 찰나의 침묵을 놓치지 않고, 다음 질문이 날아든다. 골대를 맞고 튕겨나온 공을 놓치지 않고 쇄도해 기어코 골을 집어넣고 마는 손흥민처럼. "이 화분, 전여친이 준거 맞지?"

2.

우리집 거실에는 큼지막한 몬스테라 화분이 자라고 있다. 이전에 살던 오피스텔로 이사를 했을 때, 당시에 만나던 여자친구가 선물로 보내준 식물이다. 아침에 출근해 새벽에야 집에 들어오니 식물을 돌볼 여유가 없는 상황 속에서, 삭막한 집에 식물을 들이고 싶은 마음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나보다. 이삿짐을 정리한 다음 날이었다. 당시에 만나던 여자친구가 보내준 큼직한 몬스테라 화분이 퇴근길 문앞에 놓여져 있었던 것은.

3.

몬스테라를 선물로 보내준 여자친구와는 헤어졌고, 새롭게 이사를 갔던 오피스텔에서는 3년을 살고 다시 이사를 나왔다. 새로이 연애를 했다.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몬스테라 화분은 남았다. 몬스테라는 그 명성처럼 쑥쑥 자랐다. 적당한 햇빛과 그늘, 그리고 간간히 소나기처럼 뿌려지는 샤워기 물이면 충분했다. 슬슬 화초라기보단 나무라고 불러야지 않을까 고민될 정도로 잎이 많이 나고 키도 훌쩍 커졌을 즈음, 이파리 끝까지 양분이 닿지 않는 것 같아서 쿠팡에서 산 식물 영양 앰플을 화분에 두어 개 꽂아두었을 때, 질문을 받고야 만 것이다.

4.

머쓱한 인정의 대답, 속상하고 서운하다는 반응, 미안하다는 사과, 그리고 별다른 생각도 남은 감정도 없다는 해명의 시간. 돌고 돈 대화는 장난 반 진심 반의 유치한 진흙탕 싸움으로 끝났다. "그냥 식물이야." "없애버려." "식물은 아무런 죄가 없잖아."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 그럼." "여기 말고는 햇빛이 잘 안 드는걸."을 거치며 어이없이 터져버린 웃음.

그리고 역공. "그런데 네가 쓰는 카드 지갑 전남친이 사준거지? 나도 알고 있었어." "어떻게 알았냐? 귀신이네." "딱 보면 알지. 그거 계속 쓰게 해줄게." "식물이랑 지갑이 어떻게 똑같아." "뭐가 달라." "어휴, 맘대로 해라. 아니 그런데 어떻게 알았냐고." "그냥 찍은건데?"

5.

이후로도 우리는 몬스테라가 놓인 거실에 앉아 가끔은 "저거 계속 둬?" "그럼 버려?"로 팽팽하고 유치한 공방전을 벌이곤 했다. 시간은 흘렀고, 몬스테라를 싫어했던 여자친구와도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몬스테라 때문에 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6.

퇴사를 하고 떠난 여행이 3주 즈음 마무리된 여러 이유들 중에는 몬스테라의 존재도 분명 한 몫을 했을테다. 돈을 많이 썼고, 짐을 너무 많이 가져온 탓에 여정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으며, 집에 두고 온 몬스테라를 돌봐야 하는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8월 한여름의 3주를 집 안에서 기다리며, 어떤 이파리들은 수분이 부족해 끝이 타들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와중에도 새 이파리 줄기가 길게 돋았다.

7.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더 멀리 가기 위해서 더 가볍게 살겠노라고 다짐했었다. 짐도 줄이고 얽매이는 것도 줄여야지. 그러기 위해선 이제 몬스테라와도 이별해야지. 어떤 방식으로든. 하지만 그런 마음을 품었다가도 지난 4년 동안 거실에 초록 그림자를 드리워줬던, 하지만 이제는 여기저기 타들어가고 빛바랜 구석들이 보이는 이 식물을 볼때면, 마음이 복잡해져서 했던 결심을 다시 물리게 되곤 한다. 그래서 괜스레 몬스테라의 이야기를 적어본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데, 우리집 거실의 몬스테라의 이야기는 내가 남겨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