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오롯이 나만을 위해 뭔가를 준비하고 내는 시간이 오래도록 없다시피 했었다. 일을 쉬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변화 가운데 하나는 집에서 스스로 밥을 차려먹는 빈도가 높아졌다는 것. 어떤 식재료를 쓸지 고민하고 주문해두었다가, 차곡차곡 만드는 과정이 즐겁고 뿌듯하다.

쉬는 동안, 무쇠 팬 스테이크, 멕시칸 랩, 명란 계란탕, 들기름 명란 구이, 양배추 전 같은 것들에 조금씩 도전해봤다. 순대랑 안흥찐빵도 쪄먹어봤다. 요새는 겨울이 다가오며 가리비와 굴이 제철인듯 하여 장바구니에 넣고 만지작거리는 중이다. 대부분의 반찬은 그때그때 만들고, 부득이 플라스틱 통에 담아 보관하는 반찬들도 꼭 접시에다 담아낸다. 대단한 요리를 하는 것은 아니며 조리라기보다는 조립과 플레이팅에 가까운 상차림이지만, 온전히 나를 위해 상을 차리는 기분이 좋다. 

가슴을 설레게 하는 사람 앞에서는 그간 생각해두었던 이상형이 무용지물이 된다. 마찬가지로 가슴 뛰는 일을 만나게 되면 다음엔 이렇게 일해야지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했던 다짐들이 무색하게 돌진하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지금같은 찰나의 여유 속에서 어떤 삶의 방식이 내게 최적인지, 그리고 나는 어떤 순간과 방식들을 사랑하는지 고민하는 과정들이 의미있게 남을거라 믿고 있다.

앞으로는 아무리 몸과 마음이 바쁘고 분주하더라도, 가끔은 스스로를 위해 식탁을 차리고 고기를 굽고 국을 끓여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그러기 위해 더 영리하고 더 성실하게 임할 것,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딸 것, 그리고 언젠가는 아일랜드 식탁과 대면형 주방이 있는 집으로 이사갈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