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를 하기 위해 예전에 찍어둔 사진, 썼던 글을 다시 끄집어내다보면 2024년 한 해의 시작이 너무 아득한 옛날같아서 조금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그래도 2024년 회고: 한 해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를 쓰면서 생각과 감정을 많이 정리할 수 있었다. 지난 한 해 동안 큼직한 결정들을 내리기도 했으며, 오래간만에 쫓기거나 분주한 마음 없이 많이 쉬고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어제 드디어 유럽 여행에서 얼마를 썼는지에 대한 정리를 마쳤다... 생각보다 많이 썼더라.)
아직 충분히 쉰 것 같지 않은 것이 함정...이고 새 출발이나 도전을 준비한다기엔 아무 것도 정해둔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다사다난했던 2024년을 돌아보며 배우고 느낀 것들을 Keep / Problem / Try 의 형태로 정리해보았다.
💁♂️ 계속 유지할 것들
1. 일상생활 속 루틴을 만들고, 내 주변 환경을 최적화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사소한 루틴들을 만들고 실천하면서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으로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일이 많고 바쁠 때면 일상생활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와르르 무너지곤 했었다. 추구하는 삶의 모습과 현재의 내 모습이 일치하지 않을 때 나는 일과 삶이 선순환을 그리는 가상의 구조를 상상하면서, 아직 내가 그러한 구조를 만들지 못한 탓이라 자책하고는 일로 도피하고는 했었다.
2024년 초에는 무너졌던 일상생활 속의 사소한 습관과 루틴들을 다시 만들고 가꾸어 나가는 데에 에너지를 많이 썼다. 매일 들어가 하루하루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 기록해두는 구글 스프레드 시트가 있다. 작년부터는 여기에 내게 필요한 습관이라면 사소한 것일지라도 적어두고 체크해나가며 달성률을 점검했다. 아이폰 미리알림 앱과 구글 스프레드 시트의 조합이면 일 단위, 주 단위 루틴을 잘 운영해나갈 수 있다. 덕분에 작년보다는 조금 더 건강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2. 몸과 마음의 건강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기로 했다.
건강한 몸과 마음, 그리고 맑은 뇌의 상태를 유지할 때 개인으로든 동료로든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큰 역할과 책임을 지닌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믿는다. 기본적으로 체력이 좋은 편이었고 높은 업무 강도와 긴 업무 시간 앞에서도 끄떡없었지만, 그래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예전에 비해 두뇌 회전도 늦됨을, 몸도 조금만 잘못 운영하면 금새 지치고 아프게 됨을 깨닫는다.
5월 즈음부터 매주 1회 심리 상담을 받았다. 원래 받던 주2회 PT에 더해 4분기에는 석 달 동안 주3회 수영 강습을 받았다. 가끔은 한강을 뛰기도 하고 등산도 다녔다. 퇴사할 즈음에는 실내 자전거도 샀는데, TV 앞에 두고 타면서 유튜브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엇보다 가장 잘 한 일은 역시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한 것. 일, 동료, 친구, 가족, 연인 등과의 관계 속에서 반복되는 패턴들을 살피며 내가 언제 예민하고 어떤 것에는 상대적으로 둔감한지, 어떤 방어기제가 있는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스스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자신을 조금 더 잘 메타인지 할 수 있어 기쁘고, 도움이 많이 된다.
3. 시간과 감정을 지키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의 기준을 바꿨다.
그동안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돈의 총량을 늘리거나 또는 아낄 수 있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해왔던 적이 잦았다. 돈은 그 액수 변화를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시간과 감정의 가치는 쉽사리 환산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어렸을 적부터 근검절약에 대한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와서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점점 시간과 감정 에너지야말로 가장 유한한 자원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시간에 쫓겨 조급하고 감정이 안정적이지 않으면 좋은 의사결정을 하기 힘들고, 동료들과 함께 성과를 내기도 힘들며 (리더라면 더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동시에 이해관계가 긴밀히 얽혀있지 않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 2024년부터는 돈을 조금 더 쓰더라도 시간을 아끼고 좋은 감정 상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선택을 내리기로 다짐하고 실행해오고 있다. 여전히 충분히 잘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이렇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렇게 아낀 시간과 감정 에너지를 다시 더 큰 수입으로 전환시켜야 하는 크나큰 숙제가 남아있긴 하다. 하지만 이 기조 자체는 만족스럽고 계속 유지해나가기로 해본다.
4.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뉴스레터를 2월부터 다시 시작했다. 글을 쓰고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즐겨왔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생각을 정리하고 나누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었다. 남이 읽는 글을 쓰다보면 자연스레 못난 모습들은 잘라내고 예쁘고 멋진 모습들만 남겨두고 싶은 욕망을 품게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받고 싶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실제의 나와, 내 글 속의 내가 많이 다른 것이 싫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말도 글도 조심하고 아끼려 애썼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안 쓰면 도저히 못 배길 정도로 머리가 복잡해져온 순간들이 있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글을 쓰고 뉴스레터를 운영하면서 생각이 구체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했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고, 감사하게도 여러 좋은 분들과도 글로 연을 맺게 되었다. 여전히 글을 쓰는 것이 어렵고 두렵지만 -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쓸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의 내 생각을 정리해두고 때론 사람들과 나누며 피드백을 받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자극을 줄 수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닐까. 끊임없이 자기검열하며 거짓말 하지 말고, 유체이탈 화법 쓰지 말고, 나와 우리의 성장을 위해 솔직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5. 원래라면 안 했을만한 일에 도전하려 애를 썼다.
나름의 기준과 호불호가 있고, 그래서 고집도 있다. 그러다보니 정신차려보면 늘 먹던 음식을 보고, 봤던 영화를 또 보고, 갔던 곳에 가고,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경로의존성을 탈피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마음과 반대로 움직이려 애를 썼던 한 해였다.
덕분에 평소였다면 촘촘하게 계획을 세우고 떠나 1-2주면 돌아왔을 유럽 여행에서 3주간 머무르며 원래라면 가지 않았을 도시들을 들르고 F1 그랑프리도 보고 올 수 있었다. 4명 이상 모이는 약속이면 좀처럼 나가기 힘겨워하지만, 고등학교 친구들이 모인 동창회에도 나가봤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먼저 잘 하는 편이 아니지만, 2%라도 마음이 동하면 망설이지 않고 괜히 안부를 물어보기로 정하고 실행해봤다. 충분히 잘 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넘어가고 싶다.
🙅♂️ 개선이 필요한 것들
1. 이미 판단을 내렸다면 조금 더 단호하게 실행에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선 1월 첫째 주 회고 메일에서 썼듯, 뭔가를 쉽게 선택하거나 좋아하는 편이 못 되고 늘 신중하려 애쓴다. 그렇기에 반대로 고르고 골라 선택한 대상을 믿고 아끼고 사랑한다. 그러다보면 더 기대했다가 더 실망하게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대상이 선을 넘거나 기준 미달일때도 더 오래 기다리고 믿어주려 애썼던 것 같기도 하다.
참고 견디며 나는 정말이지 할 만큼 했다는 정당성이 확보되었을때야 이별을 선언했었다. 그게 옳은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버티며 보낸 시간과 쏟은 에너지가 결국 내게도 타격을 준다. 판단을 내렸다면 조금 더 단호하게 실행에 옮기는 것이 나를 지키고 서로를 위하는 일이라는 레슨을 얻은 한 해였다.
2. 지출과 그 지출이 기여하는 생산성에 대한 고민을 아예 하지 않았다.
앞서 돈 대신 시간과 감정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 기준을 바꿨다고 썼었다. 그런 와중에 지출에 대한 제대로 된 측정도, 어떤 것에 돈을 쓰고 어떤 것을 아낄지에 대한 고민도 크게 하지 않았다는 반성을 한다. 다행히도 하반기 대부분의 자산을 달러로 바꾸고 미국 증시로 옮겨둔 덕에 전체 자산의 규모가 훌쩍 성장하긴 했지만, 돈을 쓰는 것에 대한 고민을 안 해도 너무 안 한 것에 큰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어느 정도냐면 2024년 매달, 급여보다 지출이 더 많았을 정도(...) 바꿔 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산이 훌쩍 컸으니, 투자를 정말 잘 했다는 뜻일까...
아이폰, 맥북, 음식물쓰레기 처리기 같이 온갖 이유를 들어 합리화하기 좋은 가전 제품들, 책은 괜찮으니까 라고 하면서 왕창 산 전자책과 종이책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여기저기서 새고 있는 구독 비용들 - 내게 퍼플렉시티와 챗GPT를 동시에 결제할 이유가 있었을까- 을 연말연초에야 돌아보며 정말 많은 반성을 했다. 새해에는 비용 지출을 자주 꼼꼼히 챙겨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3. 책을 많이 읽지 않았고 자기계발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
책을 읽을 시간과 여유가 없이 지낸 지가 몇 년이 되었었다. 독서모임 클럽장이나 멤버로 활동하며 그나마 반강제적으로 책을 읽었기에 독서량을 채울 수 있기는 했지만, 충분히 에너지를 들이고 머리를 쓰며 책을 읽었는지 또 그렇게 읽고 실생활에 적용해왔는지를 묻는다면 머쓱하다. 종이책은 노션에 카드를 만들어서 필사해두고 전자책은 읽으며 형광펜 하이라이트를 해둔다. 이를 토대로 살펴보면 작년 한 해 동안 대충 스무 권 조금 넘게 읽은 것 같기는 하지만, 책에 대한 감상은 커녕 정확히 몇 권을 읽었는지조차 쉽게 알기 어려운 것에 스스로 충격을 받았다. 책을 읽는 습관 자체가 완전히 무너진 셈이다. 새해에는 책도 영화도 더 충분히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보고 감상을 잘 남겨보려 한다.
💪 새롭게 시도해 볼 것들
1.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선택을 내리기 위한 기준을 마련한다.
내가 품는 감정을 고려하며 결정을 내리는 건 괜찮다. 하지만 감정에 휘둘려 선택을 그르치면 안 된다. 언제 진입할 것인지, 어떤 상황에서 출구 전략을 모색할 것인지를 미리 고민해두지 않으면 감정과 각종 편향에 휘둘리기 쉽다. 업무, 인간관계, 투자 등 각 상황마다 디테일은 다르겠지만, 큼직한 의사결정을 할 때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그간 해오던 것보다 더 명확한 기준을 함께 마련해두는 습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 매주 책을 한 권씩 읽고 독후감을 써보기로 했다.
1년이면 52권의 책을 읽고 52편의 글을 쓰게 된다. 평소였다면 이런 목표를 세우지도 않았을텐데 (양이 뭐가 중요하겠어-라며) 올해는 조금 더 의식적으로 읽고 쓰는 습관을 만드는데에 집중해보려 한다. 당연히 기계적인 독서와 쓰기는 지양해야 하겠다. 어느새 2025년의 2주차가 다 지나가고 있으니 독후감이 조금은 밀린 셈인데, 더 늦기 전에 차근차근 따라잡아보려 한다. (지금까지 '무의미의 축제', '고잉 인피니트', '인피니트 게임'을 읽었고 지금은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을 다시 읽고 있는 중이다.)
3. 매일 감사 일기를 쓰기로 다짐했다.
일기를 짧게라도 남기고는 있었지만, 가만히 내버려두면 그 날 그 날 있었던 일과 그에 대한 (이성적인) 의견 정도를 쓰게 된다. 올해는 의식적으로 스스로의 감정에 귀를 기울여주고 또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감사 일기를 짧게 써보기로 했다. 상담을 받다보면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을 애써 외면하거나 부정하며 머리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경우들이 많았음을 느끼게 된다. 감사 일기를 트리거 삼아, 그날그날 하루 스스로 느꼈던 감정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줄 수 있다면 좋겠다.
새해 다짐에서 그치지 않고, 이 글을 토대로 계속 새로운 도전들을 하고 또 이제 의미없어진 루틴들을 중단하며 하루하루를 알차게 최적화해나갈 뿐이다. 뭔가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시도를 한다기보다는 자잘한 루틴들을 설정하고 실천해나가는 것이 해답이라 믿는다. 사소한 루틴들마저도 매일 지키기 어려운 순간들이 잦으니, 잘게 쪼개어 그저 시도하고 또 시도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단한 시도의 끝에, 2025년의 끝자락에서는 조금 더 성장한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때 다시 꺼내어본 이 글이 도움이 되어있기를 바라본다.
님은 2024년을 어떻게 회고하고 계신가요?
그리고 2025년의 첫 2주를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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