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참 빠르다. 어느새 회사 생활로 돌아온지 4주가 되었다. 새 회사에서는 출근과 퇴근 모두를 기록하는데, 그러다보니 얼마나 일하는지를 시간과 분 단위로 손쉽게 계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일하는 시간이 길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적응하느라 또 여러 일을 저글링하느라, 일을 정말 많이 해버린 한 달이었다. 아침 8시에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가, 늦은 밤에야 퇴근한다. 토요일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종아리가 뻐근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 싫으면서도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80시간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주 80시간 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종종 얼치기 같은 '업계' 사람들이 그런 주장을 확산시키는 것을 보곤 한다. 스스로 일 하는 시간을 제대로 측정하고 기록하고 회고한다면 아마 그런 주장을 펼치기 어렵지 않을까.

오후나 되어야 사무실에 얼굴을 드러내고, 비즈니스 기회라는 미명 하에 흥청거리며 술 마시고 친목을 도모하고, 쓸데없는 행사에 얼굴을 비추고, SNS를 하느라 보내는 시간이 길고. 그러면서도 내가 보내는 시간이 곧 CEO로서 일하는 시간이라 당당하게 여기며 셈에 더해야, 겨우 80시간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자의식 과잉과 자기 기만. 죽을때까지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이다. 스스로를 속이는 삶은 결국 불행할 확률이 높은 것 같다.

아무리 이 시대에는 전문성 대신 탁월함이라고 하지만, 결국 연차에 기대하는 전문성이라는 것이 아예 없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잘 팔리는 키워드들을 챙겨두었어야 했나-하며 과거를 반추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돌이켜보면 작년에 창업을 하겠다고 결심한 이유 중 10% 정도는, 그렇게 쌓아온 커리어를 맞지 않는 곳들에 열심히 파느라 에너지를 쓰는 대신 그냥 내가 차려버리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아무리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고, 전문가들이 많다한들, 시장은 역동적으로 변하고 조직도 진화한다. 그 과정에서 미처 메우지 못한 틈들이 계속 생겨난다. 때로는 새로운 시장과 사업에, 때로는 조직 안팎의 문제 해결에. 제너럴리스트들의 존재가치는 그 곳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 월요일에는 예상치 못하게 늦은 시간까지 일했다. 한강에서 뛰고 집에 가려고 차를 타고 출근했던 터라, 피곤함을 억누르며 5km를 달렸다. 평소였다면 안 뛰고 집에 갔을 것 같은데 그래도 거리를 줄여서라도 뛰고 나니 뿌듯했던 밤.
• 토요일 저녁에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을 왕창 마셨다. 오랜만에 드문드문 기억을 잃을 정도로 많이 마셨고, 흥겨운 기억들과 숙취 그리고 이불킥할만한 사진들이 남았다. 평일 저녁에는 약속을 잘 잡지 않다보니, 금요일과 토요일에 오히려 마음먹고 놀려고 드는 부작용이 생겨버린 것 같다.
• 영화 '어쩔수가 없다'를 봤다. 박찬욱 감독의 전작이 떠오르게 하는 장면들, 유쾌하고 귀여운 장치들, 그리고 묵직하고도 어두침침한 유머가 도사리고 있는 소품이었다. 다시 볼 의향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