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날 적당한 속도로 달리면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나올때마다 공기의 온도와 습도로, 또 향으로 느껴지는 계절의 변화가 반갑고, 땀흘리고 돌아오며 느끼는 뿌듯함이 좋다. 학교 근처에 살 때는 정릉천을, 상수동에 살때는 한강을, 수지에 살 때는 동막천에서 탄천을 달렸다.

지금의 회사에 다니면서도 동료들을 따라 가열차게 뛴 시기가 있었다. NRC 앱을 보니 2021년이었나보다. 뛸수록 몸이 가벼워지고 기록도 좋아지는게 느껴져서 열심히 다녔었다. 잠원지구에서 시작해 강 건너 성수동의 화려한 주상복합건물들을 옆으로 끼고 달려 탄천합수부를 찍고 돌아오면 얼추 딱 10km. 업힐과 다운힐이 반복되며 혼을 빼놓던 남산 국립극장 뒤 북측 순환로는 얼추 6.7km. 회사 바로 앞에 살았던 내가 차를 사기로 결심한 이유 가운데는 분명, 한강과 남산, 그리고 성수를 오가며 달리는 시간들이 좋아서도 있었을거다.

지난 주 수요일에는 정말 오래간만에 달렸다. 9개월 만이었다. 야근하고 나서는 길 밤바람이 참 좋았고, 마침 차에는 운동복과 러닝화가 다 있었고, 새로 산 애플워치도 차고 있었던 덕이다. 딱 5km만 뛰어야지. 이 정도는 어렵지 않겠지.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니, 몸 안팎에서 안쓰던 근육이며 내장이 비명을 떼창으로 질러대는 느낌이었다. 숨도 생각보다 훨씬 빨리 가빠왔다. 하지만 기록에 대한 집착 없이 또 혼자이니 함께 뛰는 사람과 보조 맞출 필요도 없이, 멈추지도 걷지도 않고 그저 처음 마음 먹었던 거리를 뛰어냈다. 오래간만의 뿌듯함과 평안함이 찾아왔다.

땀을 식히며 예전의 기록들을 살폈다. 한창 열심히 달리던 시기는 언제나 중간이 없는 양극단 중 하나였다. 마음이 힘들어서 뛰지라도 않으면 죽을 것 같았거나, 아님 마음이 풍요로워 스스로를 여러모로 돌아봐줄 여유가 있었거나. 이번에는 어느 쪽이었을까. 사실 상관없다. 어느 쪽의 출발선에 서있었든, 일단 달리기로 했으니 더 나아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기로.

님은 달리기를 좋아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