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6 블리츠스케일링

2022. 6. 25.

🎞️ EP.6 블리츠스케일링

블리츠스케일링은 속도를 위해 기꺼이 효율성을 희생한다는 의미다. 단, 그 희생이 성과를 낼 것이라고 확신을 얻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고전적인 스타트업 성장이 비행기를 조립하면서 하강 속도를 늦추는 일이라면, 블리츠스케일링은 비행기를 더 빨리 조립하면서 날개를 만드는 와중에 제트엔진에 (그리고 어쩌면 제트엔진 재연소장치에) 불을 붙이는 일이다. 눈에 띄게 짧은 시간 안에 성공이냐 실패냐가 정해지는 이른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인 셈이다.

- 리드 호프먼, 『블리츠스케일링』

1. 요즘 사는 이야기

이번에는 무려 딱 한 달 만에 뉴스레터로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그래도 중간중간 한 편 정도의 번외편과 함께 인사드려왔었는데, 이번에는 왜인지 글을 쓰고 생각을 할 시간이 충분치 못했던 것 같네요. 슬퍼라!

업무적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고 또 새롭고 다양한 도전들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힘들지만 지나고보면 피가 되고 살이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좌절스러운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동안 어쨌거나 주어진 일은 꾸역꾸역 완수해내왔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왠지 더 하면 부러질 것 같아서 처음으로 백기를 들었습니다. 못하겠노라고 말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관성으로 자리잡지는 않도록 잘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성장 곱하기 성장' 이외에 다른 트레바리 독서모임에 멤버로 가입해서 첫 모임을 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흠모하던 분을 클럽장으로 모실 수 있어 기뻤고, 아니나다를까 첫 모임부터 무척이나 즐겁고 의미있는 경험이라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뉴스레터를 통해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기회가 닿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번 6월 '성장 곱하기 성장'에서는 책 『블리츠스케일링』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앞으로는 독서모임에서의 이야기를 다룬다기보다는 제가 읽은 책을 바탕으로 조금 더 편하게 생각한 바를 끄적여보려 합니다. 지금은 너무 쓰기도 읽기도 부담스러운 것 같은 이 뉴스레터의 구조도 바꿔야겠노라 어렴풋이 생각하고는 있는데, 어떻게 바꿀지는 조금 고민스럽네요.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끄적거리고 발송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반가이 맞이해주세요.

늘 뭔가 바쁘고 정신없고 힘들다 생각했지만, 요즘처럼 수많은 공들을 저글링하면서 버거운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꼭 내가 굴리지 않아도 되는 공을 내려두거나 넘겨두는 법을 배워나가면서, 동시에 내 공을 대신 굴려줄 수 있게 역량을 끌어올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간 자주 인사드리지 못해 송구했습니다. 더 자주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2. 스퀘어의 블리츠스케일링

스퀘어의 초창기에는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말을 광신교 집단의 기도 소리처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다음은 우리가 거친 실제 상황이다.

우리는 수백만 영세상인들이 처음으로 신용카드를 받을 수 있게끔 만들어주고 싶다. 그러니 등록 절차를 쉽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등록 절차가 간단해야 하니 소프트웨어를 단순하게 디자인하고 종이 계약을 없애지 않으면 안 된다. 가입자가 수백만 명에 이르니 고객 서비스 비용을 낮추지 않으면 안 된다. 고객 서비스 비용을 낮춰야 하니 단순한 가격 책정과 차액결제 시스템을 추구하고 추가 수수료와 종이 계약을 없애지 않으면 안 된다. 낮은 가격을 위해 광고비용을 줄이지 않으면 안 되니 일단은 끝내주는 제품과 하드웨어를 만들어야만 한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모양새 나는 하드웨어, 그리고 그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쉽게 설명해줄 수 있는 제품을 말이다.

각각의 새로운 것들은 다른 새로운 것들에 영향을 주었고 모두가 연쇄적으로, 나란히 진화했다. 우리 혁신 쌓기 전략의 어느 한 부분은 다른 특정 부분을 필요 없게 만드는 동시에 또 다른 부분의 중요성은 배가시켰다.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했다. 정말 힘든 일이지만 생존이 걸린 문제다. 그러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짐 매켈비, 『언카피어블』

책 『블리츠스케일링』의 구절 중 '블리츠스케일링은 비행기를 더 빨리 조립하면서 날개를 만드는 와중에 제트엔진에 (그리고 어쩌면 제트엔진 재연소장치에) 불을 붙이는 일'이라는 구절을 읽으면서 스퀘어의 창업 스토리를 담은 『언카피어블』이 떠올랐습니다. 『언카피어블』에서는 이를 '혁신 쌓기 전략'이라고 부르더군요.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하고, 그러면서 발생하는 다른 부산물들을 해결하고, 그렇게 끊임없이 문제를 해결하다보면 어느새 끝내주는 서비스나 제품을 만들고 경쟁자와의 거리를 저만치 벌려둘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큰 문제를 끝까지 풀어나가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되새깁니다.

3. 반직관적인 방법을 통한 빠른 성장의 명과 암

"블리츠스케일링은 꽤 바람직하고 매력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어려움과 문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특히나 이는 직관에 반하는 개념이다."

"인간의 신체 내에서 일어나는 통제 불능의 성장을 가리키는 의학용어가 있다. '암'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통제 불능의 성장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 리드 호프먼, 『블리츠스케일링』

페이팔 마피아이자 링크드인의 창업자인 리드 호프먼의 책 『블리츠스케일링』은 심지어 고전적인 스타트업보다도 더 빠른 급속 성장을 부르짖습니다. 맞습니다. 반직관적인 방법들을 통해서라도 빠르게 성장해, 승자독식의 시장에서 패권을 장악하는게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블리츠스케일링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러나 까칠하게 읽자면 『블리츠스케일링』은 지속적으로 투자금을 확보하고 출혈 경쟁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던 모바일 시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공교롭게도 시장의 크기도 기업 가치도 늘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꺼지고 있는 2022년 6월에, 이 책을 읽고 있자니 더 생각이 많아집니다.

해고가 자유롭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은 미국에서야 '가장 적합한 사람이 아닌 바로 지금 필요한 사람을 영입하라', ''부적절한' 관리도 때로는 용인하라'와 같은 단기 처방도 가능하겠습니다만, 한국에서라면 지금 필요한 사람을 영입해 급한 불을 끄고 나니 고스란히 조직의 부담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자유로운 해고를 옹호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단기적인 관점에서의 인력 운용이 용이할 때의 전략과, 그렇지 못할 때의 전략이 달라질 수 밖에 없음을 짚고 싶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 무한맵에서 미네랄을 캐는 것 마냥 펀딩이 가능했던 시기의 이야기와 지금의 이야기는 또 다를 것입니다.

급속 성장이 왜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왜 지금인지, 무엇을 챙기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충분치 않음에도 속도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다보면, 개인에게도 조직에게도 또 고객에게도 짙은 상흔을 남기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불과 1-2년 전이었더라면 마냥 끄덕였을 내용들이었겠지만,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고민들이나 상황과 연결짓다보니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었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책에서도 참고해볼법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구절들입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그저 나에게 가장 맞는 방식과 타이밍을 고민해볼 수밖에요.

"성급한 블리츠스케일링은 '우물을 오염시켜' 이제 막 발생하기 시작한 시장을 매우 극적으로 망쳐서 투자가들과 기업가들이 그 시장을 피하게 만든다."

"블리츠스케일링이 가능하다는 것이 곧 블리츠스케일링을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업의 규칙을 내던진다고 항상 규칙을 따르는 것 이상의 성공이 따르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 전략과 반대로 가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경쟁이 시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비용을 낮게 유지해야 시장이 링크드인의 가치를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고 믿었다. 앞서 고전적인 방식에 투자하라고 권했던 사람들은 우리가 '느리고 꾸준한' 스타트업 성장전략을 추구하는 동안, 경쟁자들이 우리를 따돌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는 걱정하지 않았다. 시장의 판도를 읽은 결과, 플락소(Plaxo) 같은 경쟁업체들이 직업적 소셜 네트워크의 힘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들은 자신들의 상품을 주소록처럼 여기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과 우리는 동일한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가설은 결국 이후의 사건들을 통해 입증되었다."

- 리드 호프먼, 『블리츠스케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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