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최근에 가장 인상깊게 본, 그리고 여전히 그 여파가 남아있는 프로그램이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이다 보니, 여전히 이를 둘러싼 여러 셰프들의 이야기나 인터뷰를 접하면서 장면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흑백요리사'의 셰프들이 요리를 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잠깐 떠올렸다 접어둔 생각 하나.

여러 날 것의 재료를 가공하고 조리하고 조합해서 만들어내는 요리에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같은 밭, 같은 농장에서 자라난 같은 등급의 개체들 사이에도 계절과 시기, 사소한 보관법의 차이에 따라 맛과 영양이 달라진다. 겉보기엔 같은 주재료일지라도 그 속이 다 다르고 그 차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면, 그나마 통제할 수 있는 변수들일지라도 이것들을 칼같이 통제하는 것의 의미가 옅어진다고 믿는다. 더군다나 이 재료를 가공하고 조리하는 것은 셰프라는 인간이며, 음식을 맛보는 고객 또한 자라난 배경도 그간 맛보며 넓혀온 취향도 각기 다른 인간. 그러니 같은 메뉴명을 달고 나간 디쉬라도, 그 맛을 느끼며 오는 감흥은 너무나도 천차만별이겠지 싶다.

셰프의 미각은 누적된 경험치와 감각의 노화라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치며 거듭 달라진다. 식재료는 서로 균일하지 않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도 그 맛과 신선함이 달라진다. 조리하는 환경도 전후 과정도 결코 동일하지 않다. '흑백요리사' 속 어떤 음식은 잠깐의 대기 시간 동안 식어버리기도 하고, 어느 요리사는 아예 그 시간까지 요리의 맛을 끓어올리는 변수로 상정하고 식으며 양념이 배어드는 시간을 계산해 요리를 일찍 끝마친다. 그러니 결국 우리는 이를테면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인 모수의 시그니처 메뉴 '잉걸불에 태운 도토리 국수'라는 같은 메뉴를 먹을지언정, 모두는 실은 각기 다른 근사값의 경험을 하는 셈이다. 

음식이라는 결과값에 어떤 정답도 이데아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하는게 바람직하고 현명한 것일까. 나는 나라는 재료의 맛을 어떻게 잘 끌어올릴 수 있을까. 

가급적 통제할 수 있는 변수들에 집중하여, 이들을 균등하게 조립하고 조리해 안정감을 획득할 수 있을테다. 우리가 밀가루를 튀겨 만든 면과 가루 소스를 규정된 물과 함께 정해진 시간 동안 끓여서, 라면이라는 꽤나 비슷한 결과물을 만드는 것처럼. 반대로, 우리는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편차가 발생하는 모험적인 요리를 해볼 수도 있겠다. 나를 그리고 타인을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되,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어떤 이상적인 지점이란 없음을 인정하면서.

그 지점이 어디의 무엇이든, 이상적인 고정 지점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사람인지라 타인의 판단이나 평가, 그리고 경쟁에 완전히 초연해질 수는 없겠지만서도, 매번 다른 새로운 요리를 해보기도 하고 나의 진솔한 과거를 담아보게도 된다. 어렴풋하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달려갈테고, 어렴풋하게 내가 원하는 상을 그려도 보겠지만, 그것은 언제나 약간은 흐릿한 근사값의 삶일거다. 정답도 오답도 없고, 모든 개체는 아무리 똑같이 만들려 애써도 결코 동일할 수 없으니까.

새삼, 그런 흐릿하고 모호하고 때로는 길을 잃은 것 같으며 때로는 해석의 여지가 난무하는 그런 삶이기에 오히려 모험적이고 아름다운게 아닐까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를 사진만큼이나 세밀하게 복제한 극사실주의 그림보다는 조금은 흐릿하더라도 이야기도 해석의 여지도 담긴 그림에 마음이 동하고, 그저 레시피에 따라 끓여낸 라면보다는 얼렁뚱땅일지라도 직접 만든 요리가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 수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