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인지 노래를 고르는 것이 더 고민스러웠다. 음악과 노래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내가 분위기를 망치는 건 아닐까 생각하며 망설였던 것 같다. 고민 끝에 내가 소개했던 노래는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엔딩 시퀀스와 함께 흘러나왔던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 이었다. 

퇴사를 하고 한 달 뒤,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앉아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봤었다. 어두운 기내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히라야마의 얼굴과 니나 시몬의 노래가 함께 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퍼펙트 데이즈' 속 히라야마는 영화 속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어떤 과거의 사건과 상처들로 인해 세상과 담을 쌓은 채 그림자 속에 스스로를 숨긴 인물이다. 본인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철저하게 루틴을 지켜나가던 그는 완벽했던 그의 하루를 무너뜨리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 영화는 해뜨는 아침인지 해지는 저녁인지 모를 어떤 시간 속에서, 기쁨의 눈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 모를 눈물을 흘리며 운전대를 잡은 히라야마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끝난다.

블루스의 아이콘이자 급진적 흑인 민권운동가로 알려진 니나 시몬은, 남성인지 여성인지 모를 묘한 목소리로 'Feeling good'을 부른다. 새로운 새벽, 새로운 날,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외치는 노래 가사와는 다르게도 니나 시몬이 부르는 노래 속에는 역설적인 쓸쓸함과 자조, 어쩌면 약간의 무력감마저 배어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마이클 부블레가 부른 'Feeling good'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더 강렬하게 느낄 수 있을지도.) 그러나 그 쓸쓸함과 자조 위에서 아무 것도 없이 벌거벗은 채로 던져진 새로운 날의 새로운 새벽을 직면했기에, 우리는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히라야마가 새롭게 살아갈 시간, 니나 시몬의 투쟁 앞에서 내가 풀어내고 싶은 문제들을 떠올렸다. 이 영화와 노래가 올해의 내게 특별하게 다가왔던 이유다. 

내가 고른 하나의 음악을 미리 알려주고, 모임 당일 멤버들과 이 노래를 정한 이유를 나누며 함께 들어보는 경험도 즐거웠지만, 다른 사람들이 고른 노래들과 그 이유를 들어보는 경험은 정말이지 특별했다. 한 곡 한 곡을 나눌 때마다, 나의 알고리즘은 결코 인도해주지 못했을 바다 저 편의 대륙으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렴풋이 알던 뮤지션들과 예전에 듣고 잊고 있었던 노래들부터 처음 만나는 음악들이 새로웠고, 그 노래가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소개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세상을 엿볼 수 있어서 기뻤다.

멤버들이 소개한 한 곡 한 곡이 모두 너무나 특별했지만 가장 오랫동안 마음에 남은 노래는 김창완 -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였다. 올해 특히나 많은 것들과 결별해서일까. 우리는 모두 계속해서 이별하고 또 이별하며 살아간다. 이러나저러나 남은 후회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니 언제나 마음을 다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말 것을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