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 '고독한 미식가'의 구성은 매우 단촐하다. 수입 잡화상인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가 식당에 방문해 음식을 맛본다. 매 회차는 고로가 새로운 식당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에피소드의 반복과 변주가 전부인 옴니버스식 구성. 이는 아마 이 만화가 잡지에서의 꾸준한 연재를 염두에 둔 콘텐츠이기 때문이 아닐까. 관통하는 주제의식도 스토리라인도 없는 미니멀한 구성인지라, 시작도 끝도 없다(바꿔 말하면 매 화가 새로운 시작과 끝이랄까). 그렇기에 오히려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다.

오래도록 연재되거나 시즌을 거듭하는 작품들의 경우, 초반부에 미리 해둔/해두지 않은 설정과 긴 연재 기간 사이의 미스매치가 어색함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만화 '명탐정 코난'의 쿠도 신이치는 언제까지 초등학생인걸까.) 하지만 '고독한 미식가'의 경우, 이런 어색함을 피하고자 인물과 그를 둘러싼 배경을 비롯한 많은 것들을 설명하지 않은 채 빈칸으로 남겼다. 덕분에 오로지 고로라는 인물의 반응과 감각, 그리고 새롭게 조우한 식당과 음식만이 잔잔하게 지면을 채우는 느낌이 들어 좋다. (물론 모든 콘텐츠가 '고독한 미식가' 처럼 잔잔하게 롱런해야 할 필요는 없겠다. 확실한 기승전결과 주제의식으로 강렬하게 인상에 남는 것 또한 의미가 있으니까.)

올해 2월부터 뉴스레터를 다시 쓰기 시작했으니, 열 달을 꽉 채웠다. 매주 새로운 생각을 해내기에도, 또 콘텐츠를 소비하고 감상을 남기기에도 쉽지 않았다. 나 역시 레터를 쓰다보니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하게 쓸 수 있을지, 그런 동시에 읽는 분들의 마음에 잔잔한 물결을 남길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고독한 미식가'가 좋은 힌트가 되어주었다. 더 힘을 빼되, 고민하고 또 고민할 것.

넷플릭스 '지옥' 시즌 1, 2를 즐겁게 봤다. (스포 없음) 시즌 1의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믿을 수 없는 풍경 앞에서 사람들은 지옥행을 고지 받은 사람들의 죄나 신의 의도 등에 대해 종교를 비롯한 다양한 방식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행동한다. 마치 이 드라마의 이야기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호함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의미가 없는 것에도 의미를 부여해야 마음이 편하고, 패턴이 없는 것 속에서도 패턴을 읽어내거나 만들려 애쓴다.

'고독한 미식가'의 각 에피소드는 때론 너무 배부르게 먹었나 싶어 머리를 긁적이며 끝나기도 하고, 동료를 윽박지른 식당 사장과 다투고 나오며 끝나기도, 또 어렸을 적 꺼려했던 시금치로 만든 음식을 맛나게 먹고는 하나 더 주문하며 끝나기도 한다. 고로는 그저 배가 고파 들어간 식당에서 한 끼 식사를 할 뿐이다.

하지만 별다를 의미 없는 식사와 툭툭 던지는 한두 마디 말들 가운데 어떤 것들이 마음 속 어딘가를 콕콕 건드릴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또는 과거의 내게는 의미를 지니지 못했던 만화책 속 인물의 사소한 행동에 대하여, 지금의 나는 왜 그리 의미를 부여해보곤 하는가 되돌아보며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