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회사에서 6년 반 일하며 정말 다양한 일들을 해봤었다. 독서모임을 진행하는 클럽장을 섭외해 클럽을 개설하는 일도, 명사와 함께 하는 강연이나 북토크 등의 이벤트를 여는 일도 직접 했었다. 이들 역할을 직접 맡지 않았을 때도 결국 전후 소통을 지원하거나 현장 업무를 도운 적이 잦다보니, 연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여러 연사들이 속한 분야도 또 이들이 일구어낸 성취도 다양하고 사례 하나하나가 흥미롭고 새롭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 시점부터는 이들의 이야기가 비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고객에 집착하고 본질을 추구할 것. 높은 기준을 추구할 것. 기민하게 실행할 것. 일관성을 유지할 것. 동시에 늘 컴포트 존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할 것.

이런 이야기들이 '교과서만 보고 공부했어요.'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서, 어느 시점부터는 컨퍼런스나 강연에 참석해서 오는 감흥이 많이 줄었다. 미국의 극사실주의 화가 척 클로스는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고 말했다. 뭔가를 해내어 연단 위에 선 사람들 또한, 컨퍼런스나 강연장이 아니라 각자의 일터에서 일을 하며 영감을 얻고 성취를 이루지 않았을까.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지. 여기 있을 것이 아니라, 더 집요하게 나의 일을 해나가야 하는게 아닐까. (그러니까 내가 너무 고여버린 탓이다.)

그런 와중에 참여했던 이번 주의 '롱블랙 컨퍼런스 2025' 참 좋았다. 연사들의 무게감이 상당했던 덕도 있겠지만, 내가 누군가를 바라보는 관점도 조금은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엑스 3층의 오디토리움 1,000여석을 가득 채운 청중들 앞에서 자신의 의견과 주관을 이야기하는 연사들을 엿보면서 많이 배웠다. 이들의 말과 슬라이드보다도, 그 단단한 태도와 선명한 존재감으로부터. 진정으로 뭔가를 해내어 본 사람들은 가장 겸손한 동시에 가장 당당했다. 오래전의 일화마저도 마치 영상으로 재생하듯 상세하고 선명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어렵고 난처한 질문에도 이미 고민해보았음이 분명한 깊은 대답을 내어놓았다. 그런 연사들의 면모를 관찰하다보니 오랜만에 무척 즐거운 컨퍼런스였다. 덕분에 한가득 자극받으며 돌아왔다. 새삼 적어도 나의 영역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해본다. 늘 이들처럼 거침없이 당당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