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을 받은지 6개월이 다 되어간다. 여행을 다녀왔던 8월의 3주와 추석 연휴를 제외하곤 매주 1회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다양한 사건사고들과 당시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이야기하고, 상담 선생님의 질문에 답하다보면 내가 유달리 기준이 높거나 낮은 구석들, 또는 예민하게 여기는 부분들을 발견하곤 한다. 다시 그런 생각이나 마음을 갖게 된 원인을 찾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되짚다보면, 지금의 내 성격과 마음가짐을 만드는 데에 일조한 환경과 사건사고들에 가닿게 된다.

상담을 받으면서 비로소 스스로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표현하는 것에 썩 익숙치 않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표현하는 것이 익숙치 않으니 타인의 감정을 살피는 것 또한 미숙했다. (아마 이 뉴스레터를 읽어주는 친구, 동료, 오랜 지인들 가운데는 내가 그렇게나 얘기했었는데 이제서야 이걸 인정한다고?! 라며 어이없어할 사람들도 있을거다. 미안ㅋㅋ)

무뚝뚝하고 엄격한 경상도 사람들 사이에서 나고 자랐다. 경영학과에 진학하고 학회 활동을 하고 또 일찍부터 여러 인턴 활동을 시작하면서는 늘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이려 애썼던 것 같다. 가장 오래 일했던 스타트업에서는 이르게 리더십 포지션을 맡았다. 으레 여러 스타트업들이 그렇듯, 많은 동료들이 이 곳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한 주니어들이었다. 때로는 사소한 사건 사고 앞에서 금새 눈물 바다가 되기도 하고, 분노나 짜증이 빠르게 전염되기도 했다. 나를 포함한 몇 안 되는 -조금이라도 업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일터에서의 여러 기준들을 다잡느라 동분서주했다. 남들이 화내고 울고 웃을 때면 나는 더 침착하게 구느라 애썼다.

이런저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어느샌가부터 감정을 그렇게까지나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불필요하고 심지어 비효율적인 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는 대신에, 감정 상자의 뚜껑을 꾹 닫아두고 이성을 길어다가 썼다. 스스로의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기보다는 내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데에 에너지를 쓰는게 낫다고 생각했고, 상대방의 감정을 느끼고 공감하기보다는 그 감정을 일으킨 문제 자체를 이해하고 해결하는게 서로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쌉T 모먼트...

상담 선생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사람과 사람이 진정으로 이해하고 교감한다는 것은 감정마저 나누는 것임을 깨닫는 요즘이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해야 하는 순간에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채 갑자기 뚜껑을 꾹 눌러닫아버리고는 상황 개선을 위한 효율적인 투두 리스트를 써내려가는 경우가 여전히 많겠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런 사람임을 알아가는 것은 여러모로 즐겁고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싶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난 지금의 감정은... 민망함과 후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