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가 이세돌 사범을 이긴지 9년이 지났고 (이게 어느덧 2016년 일이다), openAI가 chatGPT를 선보인 지도 2년이 지났다. chatGPT를 위시한 여러 LLM 서비스의 퍼포먼스는 날이 갈수록 놀라워진다. 성능이 좋아짐에 따라 기억력도 대화의 퀄리티도 훌륭해졌다. 이제는 이미지나 영상도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그 어색함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런 인공지능과 인공지능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로부터 뜨거운 열광과 그 이면의 서늘한 공포가 느껴지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심 큰 두려움을 품는 것 같다. 인공지능이 내 일자리를 빼앗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이라는 종이 인공지능에 종속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크겠지 싶다. 새로운 기술 발전에 대해 시기상조니 대단치 않을 것이니 하는 말을 한 사람은, 그 예측이 틀리면 큰 비웃음거리가 된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대단한 사람이 아니므로(…) 조심스럽지 않게 얘기를 꺼내보려 한다. 어쩌면, 너무 과하게 두려워하는 것 아닌가?!

한때 세상을 뒤바꿀 것처럼 떠들썩했던 것들, 하지만 지금은 지나가버린 hype들 -이를테면 블록체인과 코인, NFT, 클럽하우스, 메타버스, 전기차- 을 떠올린다. 몇 개는 사라졌고, 몇 개는 그 열광의 거품이 걷힌 이후 조용히 기존 산업의 귀퉁이에 자리를 잡았다. 인공지능은 뭐가 다를까. 과연 진정으로 다를까. 

기억력과 속도의 측면에서는 당연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성능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인공지능 또한 인간이 만든 언어와 개념 위에서 동작한다. 즉 인간의 자연어를 인풋 삼고 코드를 통해 발전한다는 뜻.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인간이 세상을 인식할 수 있는 만큼만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궤변론자 제논의 궤변 중에는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이야기가 있다.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보다 10배 빠르게 움직인다. 거북이는 아킬레우스보다 100m 앞서있다. 이때 아킬레우스는 거북이와 점점 가까워지지만 절대 거북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제논은 말한다. 아킬레우스가 100미터를 가는 동안 거북은 10미터를 더 이동하고, 아킬레우스가 10미터를 가면 거북은 1미터, 아킬레우스가 1미터를 가면 거북은 0.1미터를 앞서는 과정이 무한히 반복되기 때문에.

이거 딱 봐도 궤변같다. (100미터 뛰어보면 바로 알거잖아…!) 하지만 이 역설이 본격적으로 논파된 것은 17세기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미적분을 정립하면서라고 한다. 무한히 많은 단계의 합이 유한한 값을 가질 수 있음이 증명되었기 때문. (아킬레우스가 거북과의 거리를 좁히는 과정은 수렴하는 무한급수로 표현되며, 그 합은 유한한 시간이므로 결국 아킬레우스는 거북을 따라잡을 수 있다.)

비록 제논의 역설은 논파당하고 말았지만,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는 마치 제논의 역설 속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라는 거북이는 느리지만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 아킬레우스라는 인공지능은 그 길을 따라잡으며 거리를 바짝 좁혀나간다. 물론 AI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창작 활동도 능히 해낸다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인공지능은 결국 인간이 이미 정의해 놓은 개념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동작한다는 점에서,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보다 앞장서기란 어렵지 않나 싶은거다.

수많은 hype들은 그 거품의 정점을 지나 비로소 우리네 삶의 일부로 편입된다. 거품이 최고조에 다다를 때면 세상을 뒤바꿀 것 같은 기대감과 불안감이 들끓고, 온갖 사업과 사기들 그리고 벼락부자들이 등장하며 FOMO를 자극한다. 하지만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는 워런 버핏의 말처럼, 거품이 걷히고 나면 진짜와 가짜는 자연스레 드러나곤 한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거대한 기술의 물결이 단숨에 세상을 바꿀 것이고 이 물결 위에 올라타야 한다는 식의 말들을 잘 믿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의 행동과 습관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변화는 서서히 이루어지고, 그 사이에는 계속해서 새로운 기회와 위기의 물결들이 찾아온다. 

요새는 chatGPT로 몇 초만에 만든 것이 틀림없는 - 최소한의 퇴고조차 않아 천편일률적인 글들이 미디엄, 페이스북, 스레드, 그리고 네이버 블로그 등에 넘쳐난다. 정말 금방 질린다. 덕분인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점점 더 개성있고, 더 개인적이며, 더 창의적인 이야기들을 원하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누가 이 이야기를 썼는지, 그 이면에 어떤 숨은 이야기가 더 숨어있는지를 궁금하게 되리라 믿는다.

더군다나 시장경제에서는 정보 격차 또한 누군가의 비즈니스 기회가 된다. 모바일 환경이 익숙치 않은 4-50대를 위한 쇼핑몰, 노인을 위한 소개팅 앱과 커뮤니티 플랫폼이 만들어졌던 것처럼, 더 빠른 학습과 쉽고 편한 기능 사용이라는 가치를 제공해줄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해야 할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다고 믿는다. 진정으로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것. 그것을 위해 인공지능이 필요하다면 활용하는 것. 일부러 눈감고 귀 막을 필요는 없겠지만, 조급해하지도 좌고우면하지도 말고 그저 성실하고 정직하고 집요하게 할 일을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어쩌면 언젠가 인공지능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진화할 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적 한계 안에 머물고 있을지라도, 인간이 아직 관측해내지 못한 무언가 또는 지구 밖으로부터의 무언가를, 인공지능이 먼저 관측하고 해석하고 학습할 가능성은 존재한다. 이를 계기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적 한계를 넘어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고하는 단계에 다다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언어를 만들고 발전해나간다면, 우리는 과연 그걸 알아챌 수 있을까?

인간은 자연과 우주를 비롯한 수많은 것들을 관측하고 해석 가능한 언어로 변환시키려 애써왔다. 해석하지 못한 것들은 불확실성, 우연, 그리고 혼돈의 영역으로 남겨두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 또한 인간만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일 뿐, 어쩌면 나름의 패턴과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실은 패턴과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것마저 매우 인간적인 생각에 불과하고.)

그렇다면 그저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이미 인간을 초월한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에까지 생각이 이른다. 그래서 종교가 + 수많은 SF 영화와 소설들이 + 그동안 내가 낑낑거리며 참여했던 독서모임에서의 대화들이... (원래 전혀 이렇게 생각 안하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