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말로 퇴사한지 1년이 꽉 찼다. 슬슬 몸이 근질거려서 미뤄온 일들을 더 미루지 않고 해보려던 차에, 돕고 있던 회사 중 한 곳에서 오퍼를 주셨다. 배울 점 많은 리더들과 동료들, 일해보고 싶은 산업과 회사, 그간 생각해온 것과 비슷한 방향성의 조직 문화, 그리고 참 감사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고민이 많이 되었다. 새로운 산업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하는 것도 고민스러웠지만, 근본적으로는 다시 회사라는 조직에 들어가서 따르고 이끄는 것에 대한 물음표가 컸다. 고민으로 무척이나 심란한 두 달을 보냈다. (머리 쥐나게 고민하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점도 예약해보았다. 너무 인기가 많은 곳이라서 9월 말에야 갈 예정.)

9월부터는, 다시 한 번 회사에 속해 일해보기로 했다. 

8월 한 달은 일종의 유예기간이자 사전 정지작업의 시기였다. 

지난 주말 8월 넷째 주 회고에서 적었듯, 돕고 있던 다른 한 곳과의 협업을 마무리 지었다. 뒤돌아보니 5개월 동안, 꽤 어깨가 으쓱할만한 많은 일을 해서 뿌듯했다. 많이 배웠고 또 즐거웠다. 

이사할 마음을 먹었고 집 물건들을 왕창 버렸다. 8월이 현재의 집에서 산지 2년째 되는 달이라 일단은 재계약을 하게 되었지만, 차차 다음 거처를 알아보는 것으로 한다. 창 밖으로 나무와 수풀이 우거진, 산 속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 사는 것은 정말이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이제 당분간 누리지 못할 여름의 평일 낮을 미리 즐겼다. 기회가 될 때마다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동네 할머니들의 수다 소리, 태권도 마치고 돌아오는 꼬맹이들 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과일을 많이 까먹었고(이제 과일을 즐겨 먹는 사람이 됨), 감자탕이며 치즈버거며 스테이크까지 이런저런 요리도 많이 했다.

공유 오피스 계약은 9월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걷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동네였고, 괜찮은 카페와 식당들, 고즈넉한 러닝 코스가 있어, 회사를 다니면서도 이 곳에 나오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쉽게도 정작 오피스 건물은 늦은 시간까지 머무르는 것이 꽤나 눈치가 보이는데다 자정이 넘으면 건물 출입이 매우 번거로워진다. 회사 일을 하게 된다면 개인 오피스에 드나드는 시간은 더 늦어질 터라서, 속 편하게 일단 계약 종료를 택했다.

아쉬움과 설렘이 공존했던 한 달이었다. 

8월 한 달의 상담 주제는 대부분 회사에 속해 일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에 대한 이야기였다. 또 다시 몸과 마음을 돌보지 않고 일할까봐, 스스로를 가혹하게 몰아세우는 만큼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도 날선 모습을 보일까봐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오랫동안 다닌 회사를 퇴사하며 했던 고민들, 놀고 쉬며 스스로를 돌아보며 보낸 1년 2개월의 시간들을 상담에서 잘 갈무리해온 덕에, 예전처럼 굴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며 체력과 정신력의 최대치가 점차 낮아지는 탓에, 한정된 에너지를 더 현명하게 써야함도 느낀다. 다만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니 늘 주의를 기울여보기로 한다. 

예전에 운영하던 독서모임에서, 한 멤버 분이 삶의 곳곳에 적절한 단차를 마련해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지 않으면 삶의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가 무너질 때 도미노처럼 다른 것들이 영향을 받는다며. 

한창 회사 일에 매진할 때는 그런 삶도 있겠거니 했지만, 동시에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삶의 여러 우선순위들을 한 방향으로 정렬할 수 있다면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을테고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텐데, 굳이 단차를 마련해두고 격벽을 쳐야 하는걸까- 따위의 생각을 했던 것이다. 효율성의 논리에 경도되어, 모든 에너지를 한 곳에 집중하면 더 빠르고 확실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일의 결과물도, 삶의 곳곳에서 발생하는 중요한 이벤트들도 내가 통제할 수 없으니까. 일에 매진하는 사이 부모님이 아프시기도 했고, 돌이켜보면 더 너그러울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해 연인과 결국 헤어졌고, 바쁘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소홀했던 사이에 그들의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 해주지 못했다. 삶의 대부분을 일이라는 하나의 영역에 쏟아붓는 동안 다른 영역들이 때로 흔들렸고, 결국은 또 다시 여러 개의 공을 저글링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