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생각해보면 예전의 나 역시도 그랬다. 함께 뛰어주던 동료 덕분에,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을 거리와 페이스에 서서히 다다를 수 있었다. 좋은 친구, 동료, 코치를 옆에 둘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평소였다면 타협해 멈추거나 페이스를 늦췄을 시점에도 조금 더 스스로를 밀어붙여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부족한 역량을 서서히 끌어올리는 것도, 또 스스로의 한계를 깨고 조금 더 멀리 빠르게 달려보는 것도 모두 덕분에 가능했다. 옆에서 함께 호흡해주고, 적절히 밀어주고 끌어주는 사람들이 우리를 스스로의 예상과 기대보다도 훨씬 멀리 데려가줄 때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알게 모르게 나를 좋은 곳으로 인도해주는 감사한 사람들에게 늘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질 것을,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줄 것을 다짐해보았다.

풀타임으로 출근한 지 3주가 흘렀다. 문득문득 내가 과연 잘 하고 있는걸까? 의심하던 차였다. 경력을 갖고 입사한 사람들이 으레 갖는 - 빨리 성과를 내고 뭔가를 증명하겠다는 조바심, 스스로를 의심하고 검열하는 마음 같은 것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타이밍 좋게 면담 일정이 잡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미 충분히 곧잘 하고 있으나, 정작 스스로가 만족함을 모르면 언젠가는 몸과 마음이 다치고 실은 잘 한 것임에도 스스로는 졌지만 잘 싸웠다 정도의 마음만 품게 되니, 아주 작은 small win들을 정의하고 그것을 하나씩 해결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한결 부담이 사라지고 기분이 평소보다 좋아졌다.

스스로에게 내리는 평가가 무척 박할 때가 많았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어떤 지점에 다다르면 잠깐이나마 그것들을 즐겨도 되었었는데, 쉴 틈 없이 다음 그리고 그 다음으로 향했었다. 나도 또 과거의 팀도, 저 멀리 있는 - 아득해서 잡히지도 않을 곳으로 향하느라 바빠서, 사소하고 작은 기쁨들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던게 아닐까. (돌이켜보면 얼마나 대단한 일을 이루려고 그렇게 아둥바둥 거렸나 싶다.) 별 것도 아닌 일에 너무 만족하고 안주해버려도 문제겠지만, 내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것들 그리고 잘 하고 있는 것들을 알아줄 첫 번째 사람은 나여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함께 일했던 옛 동료가 강원도 고성에 살고 있다. 덕분에 1년에 두세 번은 강원도 고성에 가서 맛있는 음식과 술을 먹고, 바다를 보고 돌아오곤 한다. 비가 왕창 내렸던 토요일에는 생대구탕과 생대구전을 나눠 먹고, 공간이 마음에 쏙 들었던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정-말 오랜만에 온천에 가서 뜨끈한 욕탕에도 들어갔다. 나와서 솔의눈과 식혜를 나눠 마시는데 정말 꿀맛이었다. 저녁은 숯불 오리구이와 오리 칼국수. 나와서 진공관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주는 카페에서 멍때리다 돌아와 술을 왕창 마셨다.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날씨가 화창해졌다. 바다도 산도 너무나 아름다운 날이었다. 하지만 숙취가 너무 심해 장칼국수 한 그릇 먹고는 낮잠을 네 시간 잤다. 일어나서 설악산 울산바위 바라보며 막국수와 수육을 먹고, 동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의 루프탑에 앉아서 멍때리다가 다시 귀가.

여전히 도시를 좋아한다. 도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역동적인 힘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산과 바다를 비롯한 대자연 앞에서 작아지고 겸허해지는 기분도 나쁘지 않다. 동해바다와 높은 설악산 사이 강원도 고성에 갈 때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아늑하고 충만할 수 있다니 생각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