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3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2022. 3. 26.

🎞️ EP.3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생물이 멀리서도 뭔가를 감지하고 더 정교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진화는 이런 과업들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생물을 선호했다. 만약 어떤 생물이 먹잇감을 향해 너무 천천히 움직인다면 다른 생물이 먼저 그 먹잇감을 잡아채 먹어버린다. 만약 오지도 않을 잠재적 위협을 피해 도망가느라 에너지를 다 써버렸다면 그들은 나중에 필요할지도 모르는 자원을 허비해버린 셈이다. 생존하려면 에너지 효율이 필수 조건이었다."

- 리사 펠드먼 배럿,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1. 요즘 사는 이야기

근 한 달만에 스티비를 열고 글을 쓰고 있자니 새삼 오래간만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나요?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지난 2월이 무색하게시리 -그리고 더 자주 메일을 보내기로 약속하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게시리- 무척 바쁜 시간들을 보내었습니다. 독서나 글쓰기나 운동은 커녕, 붙잡고 있는 일만으로도 허덕였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머릿속에 빈 공간이 있을만한 여지를 만들어두고 그 빈 공간을 잡스러운 생각들이 둥둥 떠다니게 해야 그 중 몇 가지 생각들이 자라고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텐데요. 근 몇 주를 돌이켜보자니 그럴만한 시간도 머릿속 공간도 없었던 것 같아 아쉽다 싶습니다. 글로 다듬을만한 깊은 생각을 못했다는 이야기를 글로 적고있는 민망한 아이러니와 함께 인사를 전합니다.

2. 요즘 뉴스레터

지금 꾸준히 들어오고 계신 분들은 기존 구독자 여러분의 소개를 통해서나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올려둔 링크를 통해 들어온 것이려니 합니다. 사실 뉴스레터 시작한 직후를 제외하면 홍보 활동을 열심히 한 것은 아닙니다만 당분간은 홍보보단 꾸준히 쓰는 것과 듣는 것에 대해 고민하려 합니다.

'성장 곱하기 성장' 뉴스레터의 구독자 수는 빠르게 세 자리 수에 다다른 이후로 약간 느릿하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일종의 정체기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매주 오는것도 그렇다고 매달 오는 것도 아닌 애매한 주기인데다 + 쇼파에 누워 읽기에는 조금 헤비한 내용 탓이 아닐까 추측하며 어떤 방식으로 나만의 답을 찾아나가야 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듣고 싶은 이야기 또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 메일에 답장으로 마구 편히 전해주세요. 그리고 주변에 이 이메일 뉴스레터를 즐겁게 읽을 것 같은 친구나 지인이 있다면 넌지시 건네주셔도 좋습니다. 많은 유튜버들이 하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뉴스레터 식으로 바꿔 써보자면, 구독과 답장, 그리고 지인에게의 추천은 큰 힘이 됩니다.

3. '성장 곱하기 성장' 3월 모임 이야기

3월 19일 일요일, 트레바리 강남 아지트에서 '성장 곱하기 성장' 2-5월 시즌의 두 번째 모임을 했습니다. 함께 읽은 책은 리사 펠드먼 배럿의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이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서로를 확인했던 첫 모임에서와는 달리, 지난 뒤풀이와 번개 그리고 카톡방에서의 대화들이 쌓이고 쌓여 조금은 더 따뜻하고 친밀한 느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는 사실 저만의 생각.)

이 책을 읽다보면 희망적인 동시에 부담스러워집니다.

이러나저러나 지금 현재의 내 뇌는 과거의 경험들을 통해 연결된 배선들을 통해 구성된 결과물입니다. '당신에게는 새로운 방향으로 예측하는 뇌를 길러낼 자유가 있으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당신이 져야 한다.'라는 책 속 구절처럼 이에 대한 책임 또한 내 몫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뇌에 긍정적인 경험과 배움 등으로 씨앗을 뿌려주어야겠습니다. 이는 자라나고 자라나 미래의 뇌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꿔줄테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뇌에 제공하는 경험이 오롯이 나의 몫이고 책임이라고만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났는지, 어떠한 말과 행동에 노출되는지와 같은 것들은 우리 사회가 내게 세팅한 디폴트 값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빈곤, 날선 말들, 기존의 믿음을 강화시켜주는 뉴스나 견해들이 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렇기에 사회 구성원으로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사회에서 서로가 연결되는 방식이 인간의 뇌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렇기에 어떠한 책임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또한 즐겁고 흥미로웠습니다. 무거운 마음과 책임감은 덤이었지만요.

이렇게 2월 성장에 대한 자기계발서와 3월 뇌과학 도서를 거쳐, 다음 4월 모임에서는 『하버드 사랑학 수업』을 읽기로 했습니다. 다음 모임에서는 어떤 대화가 이어질지, 책을 고른 저도 가늠이 잘 되지 않지만 즐거울 것이 확실!

4. 나의 현재에 영향을 미친 경험들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의 미덕 가운데 하나는 기막히게 적절한 비유가 아닐까 싶은데요. 책에서는 인간의 뇌가 성장하고 성숙하는 과정을 배선에 비유합니다. '인간의 뇌는 약 25년에 걸쳐 주요 배선이 마무리되고 나서야 온전한 구조와 기능을 가진 성인의 뇌가 된다'는 문장이 가슴에 콕 박혀 들어왔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 지어지고 만들어지는 것들은 그 시간 속에서 환경의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지어지는 건축물이나, 완결되지 않고 계속 쓰여지는 만화책을 떠올려보면 조금 더 쉽게 상상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합니다.

성인의 뇌가 완성되는 과정 역시 25년에 걸친 장기 공사이니, 그 사이 어렸을 적에 받은 양육이나 큼직한 사건사고와 같은 경험들이 뇌의 배선에 영향을 미치는게 당연할텐데요. 책을 읽고 발제를 하려다보니, 나의 현재에 영향을 준 과거의 경험 몇 가지들도 떠올랐습니다.

쌀밥이 식탁에 놓이기 위해 농부 아저씨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또 왜 음식을 남기면 안되는지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 또 듣다보니, 어느새 저에게는 포만감과 별개로 음식이 남아있으면 남은 채 두지 못하고 집어먹는 습관이 생겨있었습니다. 이러한 습관이 생겼다는 걸 인지하고 나서는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깔끔하게 사라지지는 않고 있네요. 만화책을 즐겨 읽지 않는 이유, 종교에 대해서 중립적이거나 때론 까칠한 입장을 지니게 된 이유, 긴장이 되면 입술을 움직이게 된 계기 같은 것들도 떠오릅니다.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몇 가지 사건과 사고들은 기억이 아니라 뇌의 배선에 영향을 주는 형태로 자리잡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메르켈이 장장 16년 동안 총리로 재임한 독일의 어린 아이들은 '남자도 총리 할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고 합니다. 버락 오바마가 8년 동안 대통령으로 재임한 미국을 경험한 이후로는 흑인 대통령의 등장이 더 이상 어색하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되었겠지요.

이렇듯 과거의 양육이나 가정교육, 또는 뇌리에 남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나 사건들이 이런 방식으로 지금의 우리에게 남아있을테지요. 이제 저는 25세를 넘어섰기에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주요 배선 작업이 얼추 마무리된 뇌를 가지고 앞으로를 살아나가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의도적으로 불편함에 나를 노출시키며 업데이트되어야겠다는 다짐을 새삼스럽게 해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도구로 독서모임만한게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트레바리 하세요!

5. 책 속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들

1. 나에게 할당된 자유와 책임에 대해

"물론 과거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조금 수고를 들이면 앞으로 뇌가 예측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다. 약간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배울 수 있다.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고 새로운 활동을 시도해볼 수도 있다. 오늘 배우는 모든 것은 내일을 다르게 예측하도록 뇌에 씨를 뿌려줄 것이다."

"우리는 무엇에 자기 자신을 노출시킬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당신에게는 새로운 방향으로 예측하는 뇌를 길러낼 자유가 있으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당신이 져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두가 폭넓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든 어느 정도 선택의 여지는 있다."

2. 우리가 연결되어 있기에 가져야 하는 책임에 대해

"빈곤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의 뇌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들이 보인다. 연구에 따르면 생애 초기에 장기간 빈곤에 노출되는 것은 뇌 발달에 좋지 않다. (중략) 이러한 부담은 궁극적으로 아이가 성인이 되어 자녀를 낳으면 그 아이가 다시 가난하게 살아갈 위험을 증가시킨다. 이 악순환이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강화한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어떤 집단의 사람들에게 여러 세대에 걸쳐 빈곤이 지속될 때 사회는 너무 쉽게 유전자를 탓한다. 하지만 그 집단 아이들의 뇌는 빈곤에 의해 형성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뇌가 예측하기 어려운 일을 처리하려면 신진대사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사람들이 자기의 기존 믿음을 강화해주는 뉴스나 견해들로만 이루어진 이른바 반향실(eco chamber)에 안주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따르는 불편함과 신진대사 비용이 줄어든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무언가를 배울 확률 역시 떨어뜨린다."

"말은 인체를 조절하는 도구다. 다른 사람의 말은 당신의 뇌 활동과 신체 계통에 직접 영향을 끼치고, 당신의 말 역시 타인들에게 똑같은 영향을 끼친다. 그 효과를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관계없이 말이다. 그것이 우리가 연결된 방식이다."

"모든 종류의 사회적 현실은 하나의 구분선이다. 정면충돌을 방지하는 교통법규와 같은 구분선들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노예제나 사회계급과 같은 구분선들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유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해를 끼친다. 사람들은 그러한 구분선의 윤리에 대해 논쟁을 벌이지만, 우리 모두가 그 구분선들을 강화할 때마다 좋든 싫든 어느 정도의 책임을 져야 한다."

- 리사 펠드먼 배럿,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책의 몇 구절에서는 지난 대통령 선거 전후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논쟁들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더 하고 싶은 말들이 많지만, 여기까지만 흠흠.

6. 다음 에피소드 예고와 마무리 인사

오늘 에피소드는 어떠셨나요? 언제나 그러하듯, 계속 이어나가면 좋을 점, 아쉬운 점, 그리고 새롭게 시도해보면 좋을 것들에 대해 가감 없이 말씀해주세요. 이 메일에 답장으로 의견을 보내주시면, 꼼꼼히 읽고 더 나은 뉴스레터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게요. 여러분의 피드백은 큰 힘이 됩니다.

다음 정기 에피소드는 2022년 4월 17일(일) 성장 곱하기 성장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과 발제문, 그리고 떠올린 생각들을 소개하는 'EP.4 하버드 사랑학 수업'입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4월 23일(토)에 발행됩니다.

다음 에피소드를 더 즐겁게 읽기 위해, EP.4 에서 다룰 책 『하버드 사랑학 수업』을 미리 읽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만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도서 소개 링크) 그리고 저는 중간중간에 번외편 에피소드로도 인사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구독과 답장, 그리고 지인에게의 추천은 큰 힘이 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

- 육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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