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실하게 보낸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던 날들
30분 단위로, 내가 어떤 30분을 보내었는지를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기입해둡니다. 이렇게 해온 지 2년을 넘어 3년 째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시트의 빈칸에 업무 / 미팅 / 이동 / 독서 / 운동 / 글쓰기 / 식사 / 커피 / 음주 / 샤워 등의 객관식 문항들을 채워 넣다 보면, 내가 오늘 몇 시간 업무에 몰입했는지 몇 시간을 미팅이나 채용 인터뷰에 할애하는지, 얼마나 멍을 많이 때렸는지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되지요.
그런데 한 주를 다 채우고 다음 한 주에 채울 빈칸을 늘리려 시트를 열다가 돌이켜보면 조금은 당황스러워집니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일주일에 80시간은 일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요. 나름대로 열심히 오랜 시간 일한 것 같은데 다 합쳐보면 대단보다는 평범에 더 가까운 업무 시간이 나오곤 합니다. 괜스레 의식적으로 노력해봐도 일주일에 80시간은 좀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하하.
이런 측정이 나 자신을 조금 더 성실하게 살게 하기도 또 덜 억울하게 만들기도 하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문득 시계를 보니 어느새 자정이고 새벽일 때, 혼자 사무실 불을 끄고 문단속을 하고 나갈 때,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결과물이 부족해서 피드백을 받을 때, 또는 반대로 나만 이렇게 일하는 것 같을 때, 뭔가 억울할 때, 이 시트를 들여다봅니다. 순간순간 치밀어오르는 억울한 감정들은 사라지고 다시 냉정을 찾을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실은 아침 열한 시에 출근했고 밖에서 저녁도 길-게 먹고 수다 떨다 온 날도 있었고, 이번 주를 돌이켜보니 그날 하루 빼고는 사실 꽤나 적당히 편하게 일했었고, 세어보니 가장 중요한 일에 충분히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었고. 뭐 이런 사실들을, 이 시트와 그간 체크해온 투두 리스트들을 돌이켜보면서 발견하곤 합니다. 그러다 보면 나는 아직 충분히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억울한 마음이 들고 부아가 치밀 때야말로 오히려 나를 냉정하게 돌아볼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침착하자 되뇌며 스스로를 돌이켜보다 보면, 언제나 부족한 것도 내가 가장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도 내 자신이었습니다. 성실하게 보낸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던 날들을 돌이켜보고 복기하는 주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뭐 저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p.s. 열심히 하는 것의 가치를 칭송하기 위해 글을 적은 것이 아니고 주변인에게 이러한 것들을 (또는 이 정도의 기준을) 강요할 생각도 없습니다. 혹여 오해가 있을까 염려되어, 미리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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