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4 하버드 사랑학 수업

2022. 4. 23.

🎞️ EP.4 하버드 사랑학 수업

"열렬히 사랑했던 사람들의 유산은 오래도록 남습니다. 우리의 내면에 그들의 자취가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의 방향은 어떤 형태로든 그것의 영향을 받습니다. 떠나간 연인은 더 이상 현실이 아니어도 우리 인생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상실은 언제나 관계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이별 후에도 지속되는, 떠나간 연인의 의미를 인정하는 만남 말입니다."

- 마리 루티, 『하버드 사랑학 수업』

1. 요즘 사는 이야기

이번에는 일주일 만에 찾아왔습니다. 잘 지내셨나요?

부끄럽지만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사실 지난주에 보내드렸던 번외편 EP.4 성실하게 보낸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던 날들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원인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일부 사용환경에서는 최상단의 이미지가 깨진 채로 보였습니다. 이번에도 그렇게 발송될까 아직 조금 염려가 됩니다. 하나 더. 지난 편은 사실 번외편 EP.4가 아니라 EP.3이었어야 했습니다. 숫자 하나를 건너뛰어 버린 셈. 어쩌면 그 외에도 자잘한 실수들을 계속 저지르고 있을지 모릅니다. 마음이 조급해서였을까요, 머릿속이 복잡해서였을까요. 앞으로도 종종 부끄러운 일을 계속 저지르겠지만 덜 저지르려 노력해보겠습니다.

동시에 지난 EP.4는 온오프라인에서 반응이 가장 좋았던(?) 편이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답장도 많이 받았고, 따로 물어봐 주시거나 잘 읽었다는 말씀을 주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개인적이고 별것 없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느새 석 달 동안 일곱 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편지까지 하면 총 여덟 통이네요. 매일 또는 매주 뉴스레터를 보내는 성실한 발행인들에게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차곡차곡 책 이야기와 사는 이야기를 쌓아 나가보겠습니다.

2. 『하버드 사랑학 수업』을 함께 읽어보고 싶었던 이유

'성장 곱하기 성장' 2-5월 시즌 세 번째 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은 마리 루티의 『하버드 사랑학 수업』입니다.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주제로 책을 고르다보면, 자기계발서나 경영/경제 서적에 자연스럽게 손이 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 생각하며 지난 달 '뇌과학'에 이어 이번 달에는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책을 골라보았습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이별하는 과정을 통해 나의 우주가 누군가의 우주와 결합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떨어져나가기도 합니다. 사랑이라는 키워드 없이 과연 우리가 우리의 삶을 그리고 성장을 얘기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너무나도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랑이기에 때론 조심스럽게 고민해보면서 접근해야 하는 순간도 있겠지요.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모여 함께 대화하는 시간이 그러한 시간이기를 바랐습니다.

나는 누군가와 언제 어떻게 사랑에 빠지곤 했는지, 반대로 어떤 모습 때문에 내가 가졌던 환상이 깨져버리곤 했는지, 서로에 대한 애정을 어떻게 현명하게 잘 유지해나갈 수 있었는지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이별 후의 힘듦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어떻게 애도의 시간을 가졌고 또 어떠한 자취가 남았는지, 지난 연애를 통해 어떤 성장을 이루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한 사람의 역사가 다른 이의 역사와 만날 때에는 두려움과 떨림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정서가 재편되지요. 하지만 그것은 생산적인 재편이 될 수 있습니다. 관계에서 고통스러운 패턴이 재현되는 순간이 곧 성장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요.

물론 이런 순간들은 지진처럼 막대한 변화를 불러일으키지요. 이런 경험은 여러분이 그토록 조심스럽게 지어놓은 작은 집을 허물어뜨릴지도 모릅니다. 공들여 빚어 놓은 내 정체성이라는 건물에 금이 갈 수도 있고요.

그러나 이런 혼란이 유익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고집스러워 타성에 젖어버린 여러분의 내면을 다시 일깨울 수 있습니다. 봄맞이 대청소를 해야만 다락에 쟁여 놓은 고물을 처분할 수 있듯이 나란 존재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청산할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오랜 습관을 뒤흔들어 놓기 때문에 여러분을 한 단계 높은 성숙과 자아 성찰로 이끌 수 있습니다."

- 마리 루티, 『하버드 사랑학 수업』

3. 사랑과 연애를 바라보는 관점과 정치적인 올바름에 대해

이 책의 전반부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와 같이 남녀를 구분 짓고 이를 바탕으로 한 연애 전략을 세우도록 유도하는 여러 책이나 이론을 비판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버드 사랑학 수업』은 2011년에 출판된 책입니다. 트레바리 클럽 멤버들에게는 이 책이 담고 있는 비판들은 이미 조금은 식상한 이야기, 이제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쯤은 다들 아는 것 아닌가 싶은 이야기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2022년의 유튜브의 연애 관련 채널들이나 가십거리를 다루는 페이스북의 페이지들 등을 보다 보면 남녀를 구분 짓는 방식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이러이러한 남자에게 이러이러 하는 법, 이러이러한 여자에게 이러이러하는 법, 이러이러한 남자에게 주의해야 하는 몇 가지, 같은 제목이 넘실거립니다. 책 속의 예시들이 조금은 오래되었을지언정, 책이 비판하고 있는 포인트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동시에, 의도적으로 책을 삐딱하게 읽고 반론을 제기해보려 노력하는 편이라 "그러면 안 돼? 왜?" 같은 질문을 해보곤 합니다. 분류하고 정리할 때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분류하려 시도하곤 합니다. (그 근거가 과학적인지 아닌지와 별개로 말이지요.) 이러한 분류가 차별로 이어지는 것은 정말이지 안될 말입니다. 하지만 분류 그 자체조차 반대하는 것은 과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 순간이 있었습니다.

결국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효율적으로 의사결정 하기 위해 때로는 적극적으로 단순화와 분류를 사용해볼 필요가 있겠지요? 하지만 인간이 고작 너덧 개의 분류로 규정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이상 ISTJ 경상도 태생 A형 경영학과를 졸업한 30대 남자의 넋두리였습니당(...)

4. 이별과 애도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남긴 자취에 대해

이별 후에도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또는 사랑했던 사람이 사라진 나의 세계에 대해 조금 더 잘 이해하는 시간, 그리하여 이별이 나에게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주었는지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 싶습니다.

연애 후 이별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정말 가까운 가족을 먼저 떠나보낸 적이 있습니다. 수개월간 정말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마주하고 힘들어했던 것 같습니다. 실은 이 지구 어딘가에 살아있는 건 아닐까, 혹은 살아있지만 이제 평생 안 보는 사이가 되었다고 생각해버려도 되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비틀즈의 존 레넌이 또 엘비스 프레슬리가 실은 아직 살아있다고 믿는 음모론자들이 있다던데 어떠한 마음이었고 애정이었을지 조금은 이해가 되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내심 이별도 애도도 거부하고 외면하다가 어느 순간 직면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물건을 정리하고 아파서 들여다보기조차 싫었던 기억들을 들여다보다 보니, 하나하나 즐거움으로 고마움으로 미안함으로 남더라고요. 그리고 이러한 기억과 마음들을 고이 간직한 채 더 잘 살아나가야겠다고도 다짐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애도의 시간을 거치고 가족과 마음으로도 잘 이별할 수 있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또 받으며 바뀌곤 합니다. 열렬히 사랑한 연인이라면 그 크기는 더 크겠고, 헤어진 이후에도 떠나간 빈자리와 또 채 못 떼어낸 흔적들이 남겠지요. 그것들을 돌아보고 나의 일부로 보듬어주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독서였습니다.

"애도는 그저 상실 이후의 삶을 지탱하기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애도하는 법을 모른다는 건, 결국 사는 법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중략) 우리는 새로운 곳에 자신을 밀어넣어야 합니다. 힘겨운 애도의 과정은 때가 되면 그 일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 마리 루티, 『하버드 사랑학 수업』

5. 다음 에피소드 예고와 마무리 인사

오늘 에피소드는 어떠셨나요? 언제나 그러하듯, 계속 이어나가면 좋을 점, 아쉬운 점, 그리고 새롭게 시도해보면 좋을 것들에 대해 가감 없이 말씀해주세요. 이 메일에 답장으로 의견을 보내주시면, 꼼꼼히 읽고 더 나은 뉴스레터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게요. 여러분의 피드백은 큰 힘이 됩니다.

다음 정기 에피소드는 2022년 5월 15일(일) 성장 곱하기 성장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과 발제문, 그리고 떠올린 생각들을 소개하는 'EP.5 하이 아웃풋 매니지먼트'입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4월 21일(토)에 발행됩니다. 지난 1월에 읽은 책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의 저자이자 인텔의 CEO로 재직하며 반도체 제국을 건설한 앤드류 그로브의 책입니다.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를 읽고 모임을 한 뒤에 쓴 뉴스레터 링크)

다음 에피소드를 더 즐겁게 읽기 위해, EP.5 에서 다룰 책 『하이 아웃풋 매니지먼트』을 미리 읽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만 강요하지는 않겠습니다. (도서 소개 링크) 그리고 저는 중간중간에 번외편 에피소드로도 인사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구독과 답장, 그리고 지인에게의 추천은 큰 힘이 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

- 육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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