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평소 임직원들에게 조직 내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가급적 통일시키고 조직의 철학과 가치관이 함축돼 있는 독특한 용어를 개발하라고 말해오고 있다. 조직 내 언어인 용어는 경영 활동의 실행 수단이 될 뿐 아니라 그 조직의 질적 수준을 가늠케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2.

조직 내 용어를 통일하는 것은 개성을 무시하는 획일화와는 다른 차원이다. 용어를 통일하면 이심전심으로 뜻이 통하게 돼 의사소통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 오해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조직의 비전과 경영 방침에 대한 공감대를 쉽게 형성해나갈 수 있다.

3.

내 자신도 신경영을 추진하면서 직원들이 신경영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와 예화 중심의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느라 고심했다. 용어는 시대 변화를 리드하고 때로는 한 사회나 조직의 철학을 대변하기도 한다.

4.

고객 만족의 대명사처럼 인식되는 월트 디즈니에서는 독특한 자신만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종업원들을 출연진이라는 뜻인 '캐스트 멤버'라고 칭함으로써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에게 회사가 기대하는 바를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5.

고객에 대해서는 집에 초대한 손님이라는 뜻의 '게스트'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회사 내 문서 작성을 할 때 이 단어가 문장 어디에 위치하든 반드시 대문자 G를 쓰도록 의무화함으로써 고객의 중요성을 조직 내에 확산시켰다. 나는 이 두 가지 용어가 오늘날의 월트 디즈니를 만들어낸 비장의 무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 이건희 글, '말의 위력' (허문명, 『경제사상가 이건희』에서 재인용)

스포츠 선수나 감독의 일화나 영상을 곧잘 찾아보는 편이다. 작년 성적이 부진해 2부리그 격인 K리그2로 강등된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시즌 도중 염기훈 감독이 자진 사퇴하고, 전 U-17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변성환 감독을 새 감독으로 선임한다. 이후 9경기 동안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다. 그의 라커룸 스피치 영상을 살펴보는데, 으레 쓰는 후보/교체 선수라는 말 대신 '게임 체인저'라는 단어를 쓰는게 눈에 들어왔다. 팀을 하나로 만들어주고 그 역할을 상기시키는 멋진 단어 사용이었다.

일론 머스크는 사내에서 줄임말 사용을 금지한다. 으레 알파벳 몇 글자를 따서 만든 줄임말을 관습적으로 쓰곤 한다. 일론 머스크는 이러한 줄임말이 신입 사원들의 적응에 방해가 되며 회의에서 멍청해보이고 싶지 않아 조용히 앉아있기만 하는 사람들을 양산한다며, 본인이 승인하지 않은 - 커뮤니케이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약어 사용을 금지했다. (그가 SpaceX에 보낸 전사 메일의 제목은 'Acronyms Seriously Suck'이었다고.)

삼성전자 회장이었던 이건희도 이러한 언어의 중요함을 잘 인지하고 세심하게 사용한 경영자 중 한 명이다. 최고 경영진에서부터 사원에 이르기까지 통일된 용어를 쓰도록 애썼다고. 그의 말과 글로부터 나온 짧은 문장과 용어들이 실제로 널리 사용되는 것을 인상적으로 목격하기도 했다. 조직 운영과 경영에 정답이 어딨겠냐만, 생각해볼 여지가 많은 일화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