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비행기를 타서 목요일 저녁에 런던에 도착했다. 그러니 얼추 일주일의 절반 앞부분을 한국에서, 나머지 절반 뒷부분을 영국에서 보내고 있는 셈이다. 이 메일을 쓰고 있는 지금은 영국 시간으로는 아직 일요일 오전. 그런데 한국에서의 시간들이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허허. 그래도 한국에서의 월화수요일을 나름 분주하게 보냈다. 을밀대에서의 독서모임 번개, 비슷한 기간, 비슷한 업에서 비슷한 기간 일하다 비슷한 시기에 퇴사를 경험한, 그래서 서로 내적 전우애(?)가 있는 분과의커피챗, 면접 보기 전 용기내어 미팅을 청한 분과의 출국 전날 수다.

또 결국 전날 밤과 당일 새벽에 벼락치기로 준비를 끝냈다. 얼마나 오래 떠나있을지 모르는 여행이라, 더 준비가 난해했다. 티셔츠와 속옷, 신발, 그리고 노트북을 우겨넣고 대충 마무리. 짐 싸고 나니 캐리어를 끌고 여러 차례 환승하며 공항 가는 것도 일이다 싶어, 운전해서 공항에 당도해 차를 단기 주차장에 넣었다. 라운지에 앉아 숨고르며, 부랴부랴 로밍과 여행자 보험 등록하고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티켓을 예매했다. 각잡고 앉아 하면 금방인 것들인데 왜 이렇게 오래 미뤘는지 모를 일이다.

14시간의 비행 사이, 영화 '소셜 네트워크'와 '마션', 그리고 유퀴즈 박진영, 방시혁 편, 그리고 다시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봤다. '소셜 네트워크'와 '마션'은 이미 여러 차례 본 영화. 나머지는 이번이 첫 감상.

4.런던 이모저모
돌이켜보니 2015년 12월에 런던에 온 게 마지막이었다. 9년 만의 런던 방문. 시끄럽고 바깥 공기가 슝슝 들어오고 폰도 여전히 안 터지는 묘한 냄새가 나는 튜브를 타고, 숙소가 위치한 Earl's Court 역에 당도했다. 밖으로 나서니, 한여름인데도 우중충한 날씨. 길바닥의 쓰레기와 싸이렌 소리, 예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가게들. 비현실적인 풍경 앞에서 새삼 아 내가 런던에 왔구나, 와버렸구나, 하고 깨달았다. 아래는 요 며칠간 살핀 런던의 이모저모.

3박 4일치 숙소만 예약해두고 오래간만에 온 런던은 예상보다도 더 좋았다. 더 여유를 부리고 싶었고 숙소가 마음에 쏙 들었다. 지금 머무르는 곳에서 1박을 연장하고, 쇼디치 근처로 이동해 3일을 더 지내기로 했다. 런던에서 일주일을 보내게 되는 셈이다. 그 이후에는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더 생각해볼 일. 아직까지는 뒤가 정해져있지 않은 상태가 조금은 불안하게 느껴지지만,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다. 새롭고 즐거운 우연들, 그리고 무용한 시간들과 기꺼이 마주하길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