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오기 전, 나보다 먼저 회사를 퇴사한 동료와 감자탕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아무래도 책 이야기, 책 읽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다. 먼저 퇴사한 동료는 『에센셜리즘』을 읽으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읽어봤는지 물어왔다. 오래전에 사두고는 책장에만 꽂아두었던 책이다. 덕분에 그렉 맥커운의 책 『에센셜리즘』을 이번 여행 캐리어에 넣었다. 브릭레인 근처의 한적한 공원에 드러누워서 절반을, 그리고 런던에서 파리로 달리는 유로스타 기차 안에서 나머지 절반을 다 읽었다.

회사의 성장을 위해서는 새로운 제품이나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오래된 제품이나 기능의 제거나 단종을 망설이다보면 온갖 것들이 흔적기관처럼 남아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나무가 크게 자라려면 잔 가지를 쳐야 한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기고 그 외의 것들은 고통스럽더라도 단호하게 쳐내야 했다. 

생각해보면 가전제품을 다루었던 전전 회사에서도 이와 관련된 원칙이 있었다. 일생일사. 1개 모델을 신규 도입할 때는 1개 모델은 단종시켜야 하는 원칙이다. 정작 그러지 못한 채로 오랫동안 일했다. 어느 순간 어라 왜 이렇게 일이, 프로세스가 복잡해져있지, 그리고 전선이 넓어져있지 하고 당황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개인적인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떤 것들은 과거로 남겨두고, 현재와 다가올 미래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고백하건데 나는 에센셜리스트가 되고 싶은 비에센셜리스트였다. 이거 하지말자 저거 접자 주장하는 편이었지만 설득력이 부족해 뜻을 관철시키지 못한 순간들도 있었다. 반대로 회사의 규모나 단계, 풀어나갈 문제의 성격 등을 이유로, 스스로 경계를 짓지 않고 일하고 또 그렇게 일하길 동료들에게 주문한 적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회사의 규모와 단계, 그리고 풀고 있는 문제 등이 비에센셜리스트가 되어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지는 않았을텐데. 『에센셜리즘』을 읽으면서 시원한 해소의 감정과 낯부끄러운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사실 이 책에 딱히 어마어마하게 새로운 내용이 담겨있지는 않다. 그러나 어렴풋이 알고 있는 내용들, 믿고 있는 내용들을 뒷받침해줄만한 여러 서사와 데이터를 제공해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책이다. 뭔가를 안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에는 엄청나게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조직이나 집단에 속해있다면 더더욱. 앞으로도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만 남기고, 그 외의 것들을 계속해서 거부하는 선택들을 해나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 그렉 맥커운, 『에센셜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