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하반기에 불행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나는 대기업에서 커리어를 쌓겠다며, 첫 직장이었던 스타트업에서 퇴사를 선언하고 공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함께 살던 건강했던 친동생이 갑작스러운 심장 질환으로 쓰러졌다. 추석 연휴 즈음부터 시작해 연휴 내내 신촌 세브란스 병원 중환자실 앞 벤치에서 쪽잠을 잤다. 새벽부터 '누구누구 보호자 되시는 분'을 부르면 화들짝 놀라 깼다가 다시 안도하며 잠을 청하던 나날들이었다.

결국 동생은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 누구보다 괴로웠을 부모님은 혼자 남은 내게 의지하기 시작했고 사이가 틀어졌다. 나는 입사 면접에서 연달아 고배를 마셨다. 그런 와중에 동생의 사망진단서를 가지고 다니며 휴대폰을 해지하고 동생의 흔적들을 정리하고 텅 빈 집에 돌아오는 매 순간, 동생의 빈 자리를 느꼈었다. 날벼락같았던 동생과의 이별 탓에, 마음 속에는 나 역시 언제든 세상을 떠날 수도 있겠다는 허무감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내게는 2015년 10월에 개봉한 영화 '마션'이 그런 작품이었다. 앤디 위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불의의 사고로 화성에 홀로 남은 우주비행사이자 식물학자인 마크 와트니의 생존기다. 도움을 요청할 통신 수단도 없고, 지구로부터 필요한 도움을 받기 전에 식량이 다 떨어질 예정. 자칫 잘못하거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렇게 화성에 외롭게 남은 유일한 인간. 홀로 버림받은 '마션'의 마크 와트니를 보며 괜스레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마크 와트니는 달랐다.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나와는 달리 진짜로 화성에 홀로 버려졌다는 점에서. 그리고 나와는 달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낙천성과 유머감각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나가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거만하게 들리고 싶진 않지만 난 이 행성 최고의 식물학자'라며 유난을 떨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 식물을 재배하기 시작하면 그 곳을 정복했다고 할 수 있으니, 나는 화성을 정복했다고 할 수 있다'며 '닐 암스트롱, 내가 더 낫죠?' 하고 묻는 마크 와트니의 모습에 한참 웃었고, 크게 위로받았고, 많이 반성했던 것 같다. 늦은 밤 신촌역 메가박스에서 상수역까지 걸어 집으로 돌아가며 많은 생각을 했고, 왓챠피디아에다 이렇게 한줄평을 남겼었다. '더 웃고 더 웃기고 더 낙천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비록 힘에 겨운 상황들이 연달아 찾아올지라도!'

지난 여행, 런던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오랜만에 '마션'을 꺼내봤다. 수렁속에서 허우적거렸던 순간들을 떠올렸고, 그 수렁에서 나를 끄집어내어준 이 영화를 다시 만나 기뻤다.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순간이 다시 찾아오지 않길 바라는 동시에, 그런 순간에도 유머러스함과 낙천성을 무기삼아 하나씩 문제를 풀어나가겠노라 다짐해본다. 아니 근데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눈에서 왜 이렇게 땀이 많이 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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