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여행 일정에 한 조각을 더하고 싶으니 여행지에서 근사한 식사를 한 끼 하라며, 여행 중에 용돈(?)을 보내주신 어른이 계셨다. 덕분에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 저녁에 맛난 음식들을 잔뜩 먹었었다. 여행지에서 가져다온 선물도 드리고 근황도 나누었다. 평소에 교류가 깊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 알고 지냈고 일을 잘 할 수 있는 방법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깊으신 분이라,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배울 것들과 깊이 생각해볼만한 지점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퇴사와 창업을 택하면서 내 것을 하고 싶고 내 방식으로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만일 팀을 빌딩하고 함께 일할 동료들을 찾을 계획이 있다면, 그들이 합류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계속 당신과 함께 일해야 하는 이유를 늘 깊이 고민하고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남의 것을 하기 위해, 남의 방식으로 일하기 위해 회사에 합류할 사람은 없으므로.

가슴 설레는 문제를 풀 것, 일하는 방식과 적합한 인재상, 그리고 보상 등을 미리 설정해두고 철저하게 지켜나갈 것.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또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계속 솔직하게 말하고 또 말할 것. 그리하여 함께 일하는 동료 구성원들이 같은 꿈을 꿀지, 다른 길을 찾을지를 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포항에서의 병원 검진에서 더 확인해봐야 할 것이 생겨 서울로 올라온 아빠와 1박 2일을 보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아빠가 검진차 올라오신대도 못 보는 경우가 많았다. 일이 바빠서, 감정 에너지가 충분치 않아 만나면 다툴까봐 등의 여러 이유를 대며 합리화를 했던 것 같다. 그나마 조금 여유가 있었을때 간단하게 식사 정도를 하거나 또는 숙소를 예약해드리는 정도로만 신경을 썼었다. 

다행히 이번엔 마침 일을 쉬는 중에 아빠의 검진 일정이 잡혀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시간도 마음도 여유롭고 이제 운전도 할 줄 아니, 하루 정도는 그간 못했던 효자 코스프레(?)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호기롭게 큰소리를 쳤다. 서울역에서 만나서 잠깐 비는 시간 동안 롯데월드타워 120층 전망대에 들렀다가 아산병원으로 향했다. 여기서 일정을 마무리하고 서울역으로 모셔드릴 예정이었으나, 더 상세히 확인해보기 위해 추가로 잡힌 다음날 아침 검사 일정. 그렇게 반나절이 1박 2일 일정으로 연장되었고 아빠가 집에서 묵고 가시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함께 집에 와서 부랴부랴 방 치우고 잠자리를 펴고, 같이 축구도 보고 찜닭도 시켜먹고, 수다도 나누었다.

다음날 아침 검진까지 마치고 병원 푸드코드에서 밥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우리의 1박 2일은 순탄하게 마무리될 것 같았다. 내심 만족하며 내려가는 기차표를 찾아보던 중 다툼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모바일 앱으로는 시간표만 확인하고 티켓은 창구에서 예약한다는 아빠의 말에, 이참에 앱으로 예매하는 법을 알려드리겠다며 호기롭게 나선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막상 예매를 시작하고 나니, 간편결제 앱도 없고 토스도 사용한지 오래되어 인증이 풀려 인증 절차부터 다시 해야 하는 상황. 앱으로 결제를 하고 하는 것이 복잡하고 불편해 배우기 힘들다며, 창구에서 제일 빠른 표 끊고 시간이 뜨면 그냥 기다리면 되니 일단 가자는 아빠. 마음먹고 배우면 금방인데 어렵고 귀찮다는 이유로 새로운 걸 배우지 않으려는 모습이 답답한 나.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

어찌저찌 토스 인증도 새로 하고 무통장 입금으로 결제도 해냈으며 사과도 나누었다. 하지만 1박 2일의 마무리가 이런 식이 된 것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게 어렵고 불편해 피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는 것도 속이 많이 상했던 것 같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하는게 조금 덜 어렵고 더 재미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더 친절하게 알려줄 수 있다면 좋았겠다. 여러가지 숙제들을 많이 쌓게 된 날이었다.